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거짓말의
매력
오래
전 부산에서 전도사로 교회를 섬길 때 일이다. 서울로 대학원 진학을 위해 부산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평소 많이 사랑해주신 장로님께 인사를 드리러 찾아갔다. 그때 그 장로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에 목사님이 나오시지 않아 기다리다 못해 자신이 대신 설교를 하고 사택으로 목사님을 찾아갔는데 그때 목사님께서 계면쩍어 하시면서 ‘장로님, 제가 오늘 늦잠을 잤습니다’고 하시더란다. 그 순간 그 목사님의 그 정직하신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전도사님도 목회하실 때 꼭 그렇게 정직한 목회자가 되어 주세요.”
평생
목회를 하면서 젊을 때 받았던 그 도전을 가슴에 두고 정직하려고 많이도 노력해왔다. 하지만 거짓말도
참 많이 한 것 같다. 이 세상에 거짓말보다 더 편리한 것도 없다. 눈
딱 감고 양심을 덮어버리면 순간에 세상이 온통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창피하지도 아니하고
손해도 안 보고 나쁜 인상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속인다 해도 단 두 사람만은
영원히 그 거짓말을 알게 된다. 바로 하늘의 하나님과 자기 자신이다.
결단코 하나님을 속일 수 없고 자기 자신 또한 속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신다. 그
거짓은 사탄 마귀에게서부터 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들어갈 때
가장 큰 관문은 여리고성이었다. 하나님은 그 철옹성 같은 여리고를 정복하게 해주시는 대신 하나의 조건을
주셨다. 그것은 죄악된 그 여리고성 안에서 그 어떤 것도 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하나님과 지도자 여호수아를 속이고 아무도 몰래 금덩어리를 취해 자신의 집에 몰래 감추어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아간이었다. 무사히 여리고성을 정복하고
그 보다 훨씬 더 작은 아이성을 치러 갔을 때 그만 대패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나아가 여쭈었더니 하나님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너희 가운데 내 말을 어기고 여리고성에서
금덩어리를 취한 자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을 한 자리에 모아 두고 범인을 색출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아간이 잡혀 나오게 되었고
그로 인해 그의 온 가족과 가축들이 아골 골짜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거짓의 최후는
이렇게도 비참하고 끔찍하였던 것이다.
참으로 거짓말은 순간적인 달콤함이 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쉽게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하늘의 하나님은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반드시 그 대가를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간의 사건을 성경에 기록하시고 후세대들에게 교훈하고 계시는 것이다.
거짓의 반대는 정직이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부끄러움도 당해야 하고 멸시와 손해도 봐야한다. 그래서 별로 매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신다. 이 세상의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으며 존경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눈앞의 거짓으로 순간적으로 얻는 유익보다 훨씬 더 낫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지난 2019년 3월 28일
베이징청년보에 따르면 산둥성 지난시에 사는 탕샤오롱씨는 두 살짜리 아이의 골수이식 수술을 위해 병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수술에 드는 비용은 미화로 6만 달러 정도되는 40만 위안이었다.
그는 최근 병원 주변에서 지갑 하나를 주웠다. 지갑에는 2만 위안의 현금과 신용카드, 운전면허 등이 들어 있었다. 탕씨는 아이 병원비에 보태고 싶어 갈등하던
순간 지갑 주인도 자신처럼 병원비 때문에 고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탕씨는 수소문 끝에 지갑
주인을 찾아 돌려줬다.
지갑 주인은 딩이롱씨로 보상을 제안했으나 탕씨는 사양했다. 둘은 서로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얼마 후 딩씨는 탕씨가 아이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딩씨는 거물 야채상이었다. 그는 50만 위안을 병원비에 보태 쓰라며 보내주었다.
정직이 보여준 감동이다. 우선 쉬운 것이 거짓말인지라 그 매력에서
자유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더 큰 내일을 바라보며 눈앞의 작은 유익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은 정직함의 보상을 받고 누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