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중앙교회 담임)
유학의
길
스위스
유학이 결정되고 나자 준비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유학생들이 통과해야 하는 해외유학시험을
치른 후 소양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외국에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어려운 사례들과
삼가야 할 일들을 설명해주는 강사들이 고마웠습니다.
특히 중립국에서는 남북한의 대사관이 공존함으로 신분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언행에 신중을 기할 것도 당부해주었습니다. 소양교육장에는 유학 지망생들로
가득했습니다.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눈망울은 우리 조국이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는 내일의 힘찬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을 찾아갔습니다. 스위스 대사관 앞에 걸려 있는 빨간색 바탕의 흰색 십자가 국기는 파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비자는 의외로 쉽게 발급되었습니다. 친절한 대사관 직원의 배려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막상 비자를 받고
대한민국을 떠나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만감이 교차되는 듯했습니다.
이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상이 한
몸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습니다. 한국에 태어나서 3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외국에 발을 들여놓은 일이 없는 자신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의 따뜻한
부모의 배려가 고마웠습니다. 긴 세월 동안 몸을 담았던 대한민국의 품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마의 기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가족과 일단 떨어져야 하는 것도 거쳐야 하는 과정 같았습니다. 섬기던 교회에 유학이 결정된 것을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교우들은
어려운 결정에 대해 격려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기도를 할 때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히곤 하는 교우들이
고마웠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물가도 비싸다고 박 집사님은 옷가지를 한 보따리나 사왔습니다. 출국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왔습니다. 시간이 좀 더디게 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은 마음을 쓰리게 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 딸 정은이의 자는 모습이 참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유난히 마음이 착해서 늘 동생들에게 양보하던
딸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인형을 유난히 좋아하는 둘째 딸 지혜에게 가까운 문방구점에서 색깔 곱고
예쁜 바비인형을 사서 품에 안겨주었습니다. 첫 아들 신엽이는 성격이 침착하고 집중력이 남달랐습니다.
어느
날 늦도록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그 아들을 찾으러 학교로 갔습니다. 집에서 절반쯤 갔을 때
도로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엇인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어이가 아들임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수많은 조각으로 된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녀석 준엽이는 활발한 성격에 매우 활동적이었습니다. 달리기도 좋아하고 아빠와 씨름도 좋아하여 하교 후에 함께 놀자고 조르곤 하였습니다. 외국에서 자리를 잡는 대로 곧 불러서 함께 살 날이 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이때까지
만해도 서울-취리히 간의 직항 항공은 없었습니다. 김포국제공항에서
대한항공을 타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을 경유한 후 취리히로 가게 되어있었습니다. 한국을 떠나던 날
김포 비행장에서 탑승수속이 끝날 때까지 가까이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교우들이 정겨웠습니다.
탑승구로
나가는 자동문이 닫히기까지 아내는 조용히 눈길을 보내주고 있었습니다. 비행기 탑승방송을 듣고 지정좌석에
자리를 잡은 후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유학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던 수많은 지난 날들의 꿈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 아직도 꿈만 같았습니다.
대한항공은 매우 조용하게 이륙하였습니다.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방송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상공을 낮게 날고 있었습니다. 사막의 도시 제다공항에 기착 후 다시 이륙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그리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내리거나 새로 탑승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별이 빛나는 사우디의 밤 하늘을 가르고 다시 이륙하였습니다. 몇 시간 후면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스위스에
도착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취리히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지하 기차역으로
내려가 베른행 기차를 타기까지는 혼자서 행동해야 합니다. 베른 기차역에 나를 맞이해 줄 스위스 분이
나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낯선 외국인이 마중 나온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긴장이
되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알프스의 만년설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하이디 소녀의 꽃 바구니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습니다. 스위스에
도착하면 금요일 오후가 됩니다.
한국에서라면 오늘은 구역예배 모임으로 삼삼오오 성도들이 모이는 날입니다. 곧이어 주일 준비로 긴장되는 토요일이 시작됩니다. 설교 마무리도
해야 하고 주보원고도 마감하여 인쇄소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삶의 패턴에서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17년 동안 꽉 짜였던 목회자의 삶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자유롭게 바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 행 우주선을 타는 날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던 모든 일상생활이 어느 순간에 멈추고 하늘나라의
새 질서 속의 삶이 시작되는 일도 먼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 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