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합력의 파문
연말이란 동심원에 기억의 돌을 떨어뜨려
본다. 겹치듯 퍼져 나가는 시간. 그 시간 속엔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물 위에 뜬 나뭇잎 같던 시절도 있다. 그때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중엔 일하던 가게의 동료들도 있다. 포츄기
쟌, 이탤리언 아리, 등…
여기 학교를 잘 몰랐기에 아이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때 고교생 아들을 둔 매니저 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이가 무난하게 기프트 앤 탤런트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덕이다. 4개 국어를 하는 그로 해 가게에서 일어나는 문제도 수월하게 해결됐다.
캐쉬어 아리에게도 퍽 신세를 졌다. 내가 밥벌이 영어 정도를 익히게 된 것도 그녀 덕이 아닐지. 그녀는
내 질문을 다 소화할 수 없어 팔자에 없는 사전을 샀다고 깔깔댔다. 여자 가방이 다 핸드백이라 알던
그 시절 그녀는 파커북(pocketbook)이란 현지어를 써서 나를 얼먹게 했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언어의 혼란은 그 밖에도 많았다. 명절이 오면
그녀는 그에 맞는 복장과 장식으로 손님을 맞이해 풍습도 익히게 해줬다.
12월 24일 퇴근 무렵이 되면 직원들이 집에서
음식을 하나씩 가져왔다. 팟럭도 그때 배웠다. 우리도 한국
음식을 가져가, 서로의 낯선 음식을 친숙하게 나누고 노동자의 술 버드와이저로 건배하며 일 년의 수고를
함께 위로했다. 단골손님들도 쿠키 트레이 등 여러 가지 선물로 일 년의 감사를 전해왔기에 나도 얼결에
선물로 답례하는 습관을 배웠다.
스탁 맨 프란체스코에겐 타말레 먹는
법을 배웠다. 점심시간이면 멕시칸 행상들이 왔었는데 그는 자기네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며 따끈한 타말레를
사줬다. 타말레에 대한 기억은 그로 해서 늘 따뜻하다.
그때는
걸어서 일일이 가게를 방문하며 직업을 구하던 시절이었기에 이런 방법으로 우리 가게 직원이 된 그는 꼬박꼬박 주급을 송금해 고향에 집과 가게를 장만했다고
했다. 프란체스코 사장님, 하고 우리가 놀리면 그는 활짝
웃었다. 부모가 생계를 책임질 수 없을 때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나선,
국경도 걸어 넘어온 그들이 어린 영웅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에 이미 김치에 빠져 일주일에 1갤론 김치를 먹는단 델리 파트 루이도, 슬라이스 커팅을 깔끔하게
해 손님들에게 인기였던 죠이도 기억에 남는다. 제인 할머니도 잊을 수 없다. 단골이었던 이 분은 작은 것일망정 늘 선물을 들고 왔다. 손자가
중학교 졸업하던 날은 우리 애에게 주라고 그가 쓰던 장난감과 책을 몽땅 샤핑카에 실어 왔다. 이분의
호의는 내게 큰 힘이 됐다.
물론 손님 중엔 고약한 사람들도 있었다.
걸핏하면 학교에 가 영어를 다시 배워 오라고 핀잔주던 쥬이시 할아버지 같은.
가게에 장애인이 들어오면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도 그때 배웠다. 그건 생소하고 장엄한(?) 광경이었다. 장애인이 입구에 보이면 직원이나 손님이나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맞이해 샤핑을 돕고 그가 매장을 나가야
비로소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우두커니 보고 있는 건 주인 입장인 우리뿐이었다. 그 순간엔 어쩔 수 없이 소외감이 들었다. 가게 주인일망정 우리가
객이고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란 걸 절감했던 탓이다.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란 걸 확실히 깨닫게 된
기회였다.
그 시절 감동의 정점은 어느 연말에
일어났다. 메인 캐쉬어 미세스 김이 주급을 도난당했다. 연말
인파가 명동만한 86가 거리에서 그녀는 주급이 든 지갑을 팔랑팔랑 흔들며 걸어갔다고 했다.
추수감사절 연휴에 시작하면 새해 연휴까지 방범에 마음 졸이는 뉴욕 바닥에서 지갑을 흔들며 걷다니. 주급이 곧 생계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재량권 안에서
주급의 반을 다시 봉투에 넣어 줬다.
그리고 무심코 이 얘길 쟌에게 했다. 며칠 후 동료들이 십시일반 그녀 주급의 반을 모금해 전달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도록 울던 미세스 김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고마움은 내 가슴에도 넘쳤다. 쟌은 선생이 잔소리한다고 초등학교 4학년에 학교를 때려치우고 포르투갈의
집을 나온 사람이다. 이탤리 브라질 캐나다 등 객지로 돌며 삶을 익혀 온 사람이다. 인간의 선함은 과연 교육으로만 이루어지는 걸까.
35년이 지난 지금 그 격랑의 시간은 암회색 배경으로 물러나고 생동하는 인물들만 살아나
수채화처럼 조용히 파문을 그린다. 종일 웃고 떠들며 쾌활하게 일하던 할아버지 쟌, 할머니 아리, 등, 그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눔에 익숙했던 그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물기가 돈다. 따뜻한 파문(波紋)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