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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8 03:31
김탁환, 그의 이야기판은 아프고 슬펐다(+화보, 동영상)
소설의 주인공이 출판을 앞두고 자살하는 아픔 겪은 작가 “이야기판을 벌려놓으면 죽은 자도 살아나와 어울리더라”
워싱턴대학(UW) 한국학도서관이 지난 주말인 15일 마련한 50회 특집의 강사로 초청된 김탁환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판은 참 아프고도 슬펐다.
그 이야기판 속에선 아마도 본인 역시 트라우마가 됐을 고통의 시간이 있었고, 그 슬픔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김 작가에게 별도의 위로를 전해줘야 할 정도다.
생존해 있는 사람을 배경으로 함께 소설을 써가는데 그 책이 세상의 빛을 보기 바로 직전에 주인공이 자살했다는그 쓰디 쓰고, 아프고 아픈 경험만으로도 김 작가는 모든 독자로부터 위로와 위안을 받기에 충분하다.
바다가 있는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공부를 잘해 서울대에 진학해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던 그가 ‘세월호’ 사건이 없었더라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헤어지기 싫어 장교로 해군에 입대한 뒤 소설가로 접어들어 이순신 장군과 연암 박지원 등을 쓰는 역사 추리 소설가로 계속 타이틀을 이어갔을 터이다.
2014년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사건은,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이고 안타까움이고, 비극일 수 밖에 없었다.
하늘의 뜻을 알게 될 나이인 지천명이 되기 전에 멋진 연애소설을 쓰려고 준비했던 김 작가도 TV생방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배가 가라 앉으면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고 실종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결국 그는 연애소설을 포기해야만 했다.
역사 추리소설을 썼던 작가답게 한국 역사에서 세월호와 비슷한 침몰사고를 다룬 역사소설 <목격자들>를 써냈는데 이를 계기로 세월호 가족을 만나게 됐고, 침몰된 배 안에서 시신을 꺼내온 민간 잠수사인 김관홍씨를 만나게 된다.
수심이 35m 이상인 곳까지 들어갈 수 있는 심해 잠수사는 대부분 특수부대인 UDT 출신이다.
워낙 위험한 작업이어서 하루에 단 한 차례 30분간 잠수를 하는 것이 원칙인데 김씨 등은 당시 하루에 4차례 잠수를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결국 어깨나 무릎 등의 뼈가 썩어가는 잠수병에 걸렸고, 사망한 지 10일이 넘은 물컹해진 시체들을 안고 세상 밖으로 나왔던 민간 잠수사 가운데 상당수는 세월호로 인해 잠수병에다 트라우마까지 앓고 있었다.
김 작가는 잠수사 김관홍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당초에는 <포옹>이라는 제목으로 추진했지만 결국은 <거짓말이다>로 출간된 책이 나오기 전에 김씨가 자살을 하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됐다.
“2016년 3월 김관홍을 만나 소설을 쓰기로 합의했고, 그가 그해 7월까지 책을 내달라고 해서 무리하게 작업을 계속해나가 초고를 마친 뒤 김관홍에게 ‘퇴고를 하는 3주 동안 연락을 하지 말라. 책이 나오면 세월호가 있는 곳에 같이 가서 보자, 그리고 출판 뒤에 강연을 해야 하면 같이 다니자’고 말해 놨는데 어느 날 밤 내가 살고 있는 목동 쪽에서 찾아왔습니다.”
김 작가는 당시 대리 운전을 하던 김관홍씨가 찾아오자 “지금은 막판 퇴고를 해야 하고,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했는데 왜 찾아왔냐”고 호통을 치면서 밤새 술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소설가가 소설의 결말을 말해주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김관홍씨는 밤새 김 작가를 보채면서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라는 결말을 말해달라고 했다. 하도 조르는 데다 밤새 마신 취기 등으로 새벽에 이르러 “주인공이 산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러자 김씨는 너무 좋아하며 머리가 자주 아프다는 김 작가에게 "이 모자를 쓰면 머리가 아프지 않다"며 자신의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주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고 한다.
그 뒤 얼마가 지나지 않아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뒤에 안 일이지만 김관홍씨는 김 작가에게 줬던 모자들을 여러 개 사서 자신에게 잘 해줬던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며 이별을 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작가는 이날 UW 북소리 강연의 마지막 슬라이드 장면을 김관홍씨가 선물로 줬던 모자를 쓰고 찍은 기념사진으로 꾸몄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지만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상황을 놓고 두 가지 시각과 입장 등이 엄연히 존재한 ‘세월호 사건’이지만 김 작가는 소설 속에서 이념적으로, 혹은 사건적으로 누구의 책임을 따지지는 않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는 현재도 매일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250여개의 불이 밝혀지는 빈방의 주인공들, 그리고 그들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 냄새로 시신을 찾아 엄마 품으로 데리고 나왔던 잠수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 이번 강의 제목이 ‘소설과 아름다운 인간’이었는지 모른다.
김 작가는 “이야기 판을 벌려놓으면 죽은 자도 살아서 나와 산 자들과어울려 함께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죽은 자들과의 이야기판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