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쾌락이 행복을 갖다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쾌락이 행복을 제공해주지 못합니다. 쾌락주의자인 바이런은
인생의 말년을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인생은 벌레같은 것이야. 늙음과
슬픔 앞에서는 쾌락도 무용지물이다. 나는 지금 심히 외롭다”고 고백했습니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백만장자 제이골드의 유언은 참으로 비극적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끊임없는 물욕이 나를 불행의 늪으로 빠뜨렸다"고
탄식했습니다.
명예도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대왕은 싸움에서 승리한 후 막사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정복할 곳이 없단 말인가?"하면서
말입니다. 명예와 재물을 모두 소유한 베콘스필드경의 탄식은 실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내 젊은 시절은 온통 실수 투성이었어. 중년은 투정과
욕심의 노예였지. 이제 남은 것은 후회뿐이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귀와 영화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해답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신비로운 존재입니다.
성경 속 인물이나 이 땅에 존재하는 인물들 중에서 예수님을 위해 살고 헌신한 사람들이 후회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랑할만 하던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평생을 다 바쳐 주님께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선포한 생의 결론은 참으로 감탄할만 합니다.
<딤후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
세상 그 누가 이 같이 놀라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선포해 두었습니까? 오직 예수님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사도 바울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단 하나 뿐인 생명도 아끼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이었습니다.
<행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는 말씀과 같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돈을 위해서
살 것입니까? 명예를 위해 살 것입니까? 아니면 쾌락을 위해
살 것입니까?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어차피 단 한 번뿐인 인생일진데 허망한 이 세상의 그것들을 쫓아가다 진짜 소중한 것들을 다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이제 더 이상은 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존경 받고 사랑 받는 멋진 삶을 살고 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그런 길을 택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거의 하루에 한 사람씩 1년에 300여명을
전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대통령이 되려고 유세를 하러 다닐 때는 3개월 만에 30여만 명을 만나고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깊이 후회하였습니다. “내가 잠시 머물
대통령 자리를 위해 하나님의 일보다 더 열심히 살았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단 한 번도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임 후에는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며 봉사하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인생의 가치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대통령 때보다 퇴임 이후에 더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 맡긴
인생은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