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숙 수필가(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어머니의 꿈
우리 어머니는 언제나 가방을 들고
다니시는데 항상 무겁다.
근무하고 있는 어느 날 몹시 바쁘신
어머니께서 병원에 오셨다는 전화를 수위실로부터 받고 느닷없는 방문에 반가움보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농번기(農繁期)에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시면 큰일 나는 줄 알면서 자란 나는
염려가 되었다. 수위실로 뛰어가 어머니의 얼굴을 보기 바쁘게 안색을 살피니 어머니는 당신의 팔이 아파서
머리도 빗을 수 없었다고 하신다.
아마 통증이 심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바쁘신 중에도 진찰받으러 딸이 근무하는 이 먼 곳까지 오신 것이다. 그때 당시 김제에서 군산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도로는 포장이 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람이 녹초가 되는 시절이었다.
정형외과에 접수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상의를 모두 벗고 팔의 움직임을 보면서 의사가 진찰을 한다. 민망한 처지이지만 의사는 대화를 잘하시면서 분위기를 어색하지 않게 이끌어 가셨다.
혹시 전도 부인(전도사)이냐고
물어보셨다. 나 어렸을 때 전도부인이라고 하면 성경책 가방을 들고 가정 방문을 하며 전도하는 일을 했다. 우리 어머니도 농촌에 사시니 성경을 읽으실 틈이 없어 어디서든지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읽으려니 하고 무겁게
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 의사는 이북에서 오셨고 신앙이 좋은 기독교인이셨다. 어머니는 아니라고 대답했는데도 “전도 많이 하세요” 하면서 친절하게 치료를 해주셨다. 어머니께서는 기분이 좋으셨을 것이다. 전도는 우리 어머니께서 하고 싶으셨던 희망 사항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었다. 나는 어머니께 팔에 무리가 가니 가방을
가볍게 성경과 찬송은 집에 두시고 다니시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하신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눈이 밝을 때 성경 많이 읽어라”하시면서 돋보기를 써야 읽을 수 있는
불편을 말했다.
그러면서 꿈 이야기를 하셨는데 꿈에 어떤 분이 어머니에게 나타나 왜 그렇게 가방을 무겁게
들고만 다니느냐 하시면서 가방 안에 있는 것을 깨트려 먹으라고 해서 가방을 열어보니 큰 수박 두 덩이가 가방 속에 있었다고 하며 무겁게 그것을
들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보셨단다.
꿈을 꾸고 난 후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몰라 생각을 많이 하시다가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성경은 수박과 같이 쪼개 먹어야 맛을 아는데
자기는 무겁게 들고 다녔다고 하시면서 젊었을 때 선교사님들에게 성경을 배우기 위해 며칠씩 걸어서 다니면서도 기쁘게 배웠다고 지나간 일을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는 내가 앞으로 돋보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 일이 없었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거나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이후부터는 틈이 있으면 읽으려 마음 속에 다짐은 하는데 작심삼일(作心三日 )이
되어 오래 지속하지 못했고 항상 바쁘니까 핑계가 많았다.
요즘 나는 돋보기가 없으면 읽을
수 없이 되었고 나이도 많고 몸도 불편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지금이 황금 시간이라 생각한다. 성경을 읽으며 깊이 있게 공부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꿈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농촌 보건 사업을 하면서 가정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원두막을 지나노라면 주인이 잘 익은 수박을 대접해 먹는 기회가 종종 있었다.
잘 익은 수박은 바닥에 놓기만 해도 그냥 몇 조각이 난다. 그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안다. 정말 연하고 맛이 달다. 성경을 쪼갠다 하면 이상하지만 성경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알게 되면 아마 그런 맛일 것이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늦기 전에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라고 말한 전도자의 말씀을 지난 추수 감사일에 가족 모임에서 들려주었다.
나의 자녀들과 손주들이 이 말씀을
유언처럼 듣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거울을 보면 빙그레 웃으며 나를
보고 계시는 어머니가 거기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