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소통하는
세상
노트북이
먹통이 됐다. 요즘 같은 세상에 7년 생존이면 퇴물이긴 하다. 사실 얼마 전부터 녀석이 투병 중이었다. 화면의 반이 툭 사라지는
현상, 급할 때마다 모서리 언저리를 두어 번 툭툭 치면 화면이 살아났다. 본체에 저장되어 있는 것을 진즉 메모리칩에 옮겨야지, 하면서도 하루하루
미루다 보니 사달이 났다. 일상이 일시에 헝클어졌다.
노트북에
충전된 전기를 다 소모시키고 나서 다시 켜보라는 말이 생각나서 전원스위치를 뺐다.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에 노트북을 켰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망진단을 내리기엔 여전히 아쉬웠다. 기도하듯 전원스위치를 켜고 끄기를 반복하고 있는데 한순간, 화면이
설핏 열리는가 싶더니 글씨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럴 수가, 아이를
어르듯 다시 전원스위치를 켰다. 오, 맙소사! 다시 글씨가 나타났다.
“PC가 작동하지 않아 오류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저와 내가
소통이 됐다는 기별이다. 채 한 줄도 되지 않는 글귀이지만 이렇게 위로를 줄까. 금속성의 물체가 아닌 생명체에서 느끼는 체온 같은 게 느껴졌다. 순간
녀석에 대한 무한애정이 생겨났다. 그러고 보면 사랑이란 것도 소통이 되고나서의 일이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 내가 당신 속을 어떻게 알겠소, 말을 하지 않는데. 부부싸움의 원인도 소통부재에서 오는 걸 보면
그 무게를 알만 하다. 적군의 암호해득 역시 저들의 소통을 알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어젯밤, 어머니가 전화선 너머로 글 한 편을 읽었다. 당신의 외로움을 덜어드릴
겸 글쓰기를 해보라고 권한 지 오래다. 야야. 내가 오늘
글을 한 편 썼다. 하도 니가 닦달을 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년도 더 지나고 쓴 첫 작품이다.
나뭇가지에
새집이 하나 있었다. 워낙 낡았는데 어느 날 까마귀와 까치가 집을 두고 싸움을 벌였다. 까마귀의 덩치를 까치가 어찌 당할까 싶었는데 이외로 까치가 집을 차지했다. 두
마리가 열심히 집을 보수하더니 어느 날부터 암컷은 알을 낳고 품는지 꼼짝을 안하고 수컷이 먹이를 날랐다. 그런데
수컷은 먹이를 물어오는 일 외엔 잠시도 떠나지 않고 암컷 주변을 지켰다. 지아비 노릇을 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잠시 숨고르기를 했다. 당신도 느꼈을 지아비의 벅찬 무게 때문이리라.
그동안 내가 수도 없이 들어왔던 말, 나도 이제 가야지,
너거 아부지 옆으로 가야지. 어머니의 죽음타령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다는 게 글을 통한
소통의 수확이었다.
위로라는
걸 알면서도 작가가 잘 쓴다니 참 좋다, 는 어머니. 그러나
정작 내가 좋은 건 당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새로운 세상과 소통 중이라는 사실이다. 다음 글의 제목도
정해 놓았단다. 당분간 어머니가 아프다는 얘기는 듣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금속성 기계를 통한 소통에서 체온 부재를 운운할 일이 아닌 듯하다.
소통의
위력은 크다. 코로나 이후 우울증 환자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기사를 자주 만난다. 가정폭력도 늘었다. 이혼도 늘었다고 한다. 소통부재에서 오는 결과 아니겠는가. 사실 오늘날의 첨단 기술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소통에 의한 결과다. 세대를 이어서 나누는 지식의 공유일 테니. 그러고 보면 코로나 팬데믹에 빠져 있는 지금,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의 필요성이 요구되는 때인 것 같다.
오늘은
글방모임이 있는 날이다. 컴퓨터 앞에 모여 앉는 비대면 모임이지만 다들 반갑다. 이렇게 화상으로나마 소통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수다를 떨었다. 그간
집콕의 우울한 감정들도 달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모임을 파하자마자 다들 한순간에
화면에서 사라졌다. 밥 먹자, 라며 소란스레 이어지던 뒤풀이, 그런 체온나누기가 없다. 꼭 가상의 세계에 들앉아있다 나온 듯했다. 갈증이 인다. 최근에 번지고 있는 재택근무가 직원들의 협조와 직장에
대한 애정을 떨어뜨린다는 소식이 때맞춰 들린다.
아침마다 회답도 없는 카톡을 날리는 이들은 어떤 마음에서 일까.
세상과의 소통을 원하는 저만의 비밀창구 같은 건 아닐까. 카톡이든, 컴퓨터 화상이든 마음을 담는 기계다. 화면 뒤에 깔린 온기를 느낄
수만 있다면 소통하는데 무엇이 문제이랴. 컴퓨터 화상에서 만나는 비대면 얼굴들, 코로나가 끝나면 얼굴 보고 만나야 할 소중한 인연들이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아무래도 밥 먹자, 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