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인생을 거는 투기
우리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금력이나
권력이나 그 무엇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이
안고 있는 불안의 원인도, 그것이 경제 문제이든 건강 문제이든 죽음과 연결될 때 나타나는 불안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죽음이여,
너 때문에 인간은 죽을 때까지 불안하구나!”라고 탄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가항력적인 속박 앞에서
죽음을 초월한 생명의 영원성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입니다. 때문에 여러 종교의 창시자들은 제각기 특이한
삶의 법칙과 영생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특히 기독교를 낳은 예수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는 수많은 기사와 이적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가르치겠는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누구든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등 보통 인간의 격에는 가당치 않는 언행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 자신을 하나님과
동격시한 것이라든지, “내가 곧 생명이다”라고 한 그 말은
그가 생명을 영속화시킬 수 있고 죽음을 생명화시킬 수 있음을 뜻하는,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나 역사를 통해서 예수가
신성을 겸비한 초인적 존재임을 대부분이 믿고 있지만 성경을 읽고 역사를 보아도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의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언행에 회의를 느끼면서 예수를 다만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라든가 위대한 도덕가로는 인정하면서도 그를 구세주로는 믿어지지 않는 갈등이 있을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를 거부하고 돌아서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예수와 직면해서 그의 교훈에 접해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한가지 결단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정말 모든 인류가 안고 있는 무거운 삶의 짐을 해결 지을 수 있는가.
그가 참으로 인간 모두가 따라야 할 올바른 길이고 참 진리인가. 그가 과연 영원한 생명을
보장할 수 있어서 그를 통해서라면 죽음까지도 포함한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검증해
볼 수도 없고 확인해 볼 수도 없는 그 신비로운 약속을 믿어 보기로 하는 투기적 결단인 것입니다. 투기이기
때문에 그 결단이 잘못된 선택이라면 아무 것도 얻는 바가 없는 허무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면
놀라운 삶의 변화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리면서
생각해야 할 한가지 사실은, 과연 예수의 참 사랑과 인격을 믿고 그를 따라갔다가 실망하여 우회하고 돌아선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인생의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외친 예수는 그 누구 한 사람도 책임지고 돌볼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 누구를 도와줄 만한 경제력이 있은 것도 아니고, 어떤 권력이나 높은 지위를 가진 것도 아니었고, 남다른 수완이나 처세술에 능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나사렛 사람들 만도
아니고 이스라엘 민족만도 아니고 모든 인류에게 다 오라고 했으니 아연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제는 어떠했습니까.
그를 따라간 수많은 제왕들, 권세가들, 학자들이 그의 앞에서 새로운 인생 길을 찾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를 찾아간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참 평안과 기쁨과 소망을 안고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역사적인 실증을 고찰해 본다면 우리가 그에게 인생을 걸고 투기를 할 때 승리의 가능성은 100%일 것입니다. 그 100%의
탄탄한 가능성에 인생을 걸고 투기하는 사람이야 말로 죽음의 속박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는 영생을 준비한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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