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ㆍ전 청와대
홍보수석)
신학원 만학도들의 춤바람
축제는 해방이다, 자유다, 일치다, 사랑이다! 참여자 모두가 배우인 동시에 관객이다. 프랑스 혁명에 불씨를 지핀 장 자크 루소도 「고백록」에서 축제 예찬론을 펼쳤다. “축제에 관객들을 끌어들여 그들 스스로 배우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각자가 자신을 다른 사람들 속에서 보고 사랑하게 만드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은 더욱 긴밀하게 하나로 결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학원에 춤바람이 났다. 바람이 불어도 아주 세게 불었다.
“닐리리야 닐리리~ 닐리리 맘보~”
교리교육학과 1학년들이 경쾌한 율동과 흥겨운 노래로 초반 분위기를 장악했다. 아이쿠~, 저런 끼를 그동안 어떻게 숨기고 살았을꼬?
5월 14일 토요일 저녁, 가톨릭교리신학원 옥상 ‘하늘 광장’. 신학 공부에 늦바람이 난 ‘어르신 신학도’들이 나이를 잊은 채,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일치의 기쁨과 친교의 여유를 누렸다.
신학원 학생자치회는 매년 5월 재학생, 졸업생, 교수, 학생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밀씨 축제’를 연다. 올해가 51회였다. 14일 일몰을 기준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오순절)이 시작됐다.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 주신 날이다. ‘덕적도의 수산나’ 자매님이 단체 카톡방에 축제 소감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성령의 바람과 함께~ 우리 모두의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낭만을 향하여~!”
신학원 건물은 5층 높이에 불과하지만 서울 성곽길의 낙산 줄기에 자리 잡고 있어 해발 고도는 제법 높다. 옥상은 사방팔방 위아래가 확 트인 공간이다. 이름 하여 하늘 광장! 축제의 순간, 그곳은 ‘지붕 없는 콜라텍’으로 바뀐다. 땅에는 불빛, 하늘에는 별빛! 태양이 모습을 감추고 땅거미가 내려앉으며 온 세상이 어둠에 파묻히자, 한양 도성이 발아래 깔렸다.
만학도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누가 알아줄까. 김진태 신부님이 지난 2월 졸업식에서 교리신학원장 소임을 마치며 읽어준 고별사 겸 축사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젊지 않은 나이에도 일주일 내내 하루 6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거나, 저녁반의 경우 수업에 늦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처량했습니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해 본 적이 없는 교실 청소나 화장실 청소는 얼마나 낯설었습니까? 손자까지 있는 어른을 일개 학생 취급하는 원장 신부는 또 얼마나 밉상이었습니까?”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엄격 그 자체’인 김 신부님이 이렇게 깊은 마음을 갖고 계셨다니….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김 신부님도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오소서, 성령님이여!” 5월의 감미로운 훈풍 속에서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공부 스트레스를 싹 씻어줬다. 이 또한 성령님이 주신 은총 아니겠는가.
살굿빛 얼굴, ‘평생 동안(童顔)’이신 최승정 원장 신부님이 무대에 올라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을 불렀다.
“문득 외롭다 느낄 때 하늘을 봐요, 같은 태양 아래 있어요, 우리 하나예요~”
자매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오빠 부대로 돌변하더니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쳤던 것처럼.
축제의 그 순간, 하늘 광장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였다. 그러나 축제를 마치고 하늘 광장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갔다. 냉혹한 현실이다!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미(already), 아직 아니(not yet)’의 신학 이론을 체험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