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홍(교육전문가)
거짓말은
윤활유
동부의
사립고등학교 12학년 학생인 M군은 UC(University of California)에 마감일 날 지원서를 가까스로 접수시켰다. 그리고 3일 후 한국에 있는 아버지에게 카톡을 보냈다. ‘UC로부터 캠퍼스 인터뷰 초청장이 와서 12월 중순에 캘리포니아를
방문해야 한다’라고.
아들의 소식을 반기며 아버지는 ‘인터뷰 잘하기 바란다’라는 격려 문자와 함께 왕복비행기표를 예약해주었다. M군이 UC에 지원서를 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했다. 학부지원자에게 인터뷰를 하지도 않는
대학을 핑계로 여자친구와 함께 샌디에고에 놀러 가려고 꾸민 것이다.
M군이
거짓말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눈앞에 보이는 당장의 즐거움을 위해서다.
그런 자녀의 거짓말을 향해 박설미의 소설 <사소한 거짓말>은 대응방법을 이렇게 서술한다. “자식을
너무
믿는 게 아닌가 싶군요. 누구도 섣불리 믿어서는 안 되는 법인데 말이죠.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뭔가요. 바로 타인은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게 아무리 자기 배로 나온 핏덩어리라 해도 예외는 아니지요. 자식도 타인은 타인이니까요.”
과연, 자식을 의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까.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괴로운 상황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주자 버니 샌더스를 2015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타임이 만일 올해의 거짓말쟁이를 선정한다면 누가 뽑힐까.
아마도 9ㆍ11 테러
당시 무너져 내리는 무역센터 빌딩을 향해 뉴저지에서 수 천명의 무슬림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한 도널드 트럼프가 윗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새 아가, 나는
널 늘 딸처럼 생각한단다’라는 시어머니, ‘벌써 가시게요. 며칠 더 계시다 가세요’라는 며느리가 나란히 뽑힐 것이다.
‘우리 대학은 지원자의 재정형편에 상관없이 뽑는다’라는 입학사정관, ‘나 살쪄 보이지’라고 묻는 여친에게‘네가 살쪄 보이면 백화점 진열장에 있는 마네킹을 돼지라고 불러야 해’라는
남친도 등수에 오를 것이다. 오직 재판이 있을 뿐 진실은 뒷전인 법정에 모인 판사ㆍ검사ㆍ변호사, 그리고 환자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는 의사도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숨쉬듯 거짓말을 하며 알게 모르게 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환경에서 솔직함은 오히려 분란이나
소란만 일으키는 무책임한 짓이 될 수 있다.
명품상점에 온 손님을 보고 ‘억울하게 생긴 얼굴이라서 저희 브랜드 이미지와 맞지 않네요’라고 점원이
솔직하게 말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다음에 언제 식사 한번 같이 하자’라고 예의상 말한 것에 ‘그럼 언제 어디서 할지 지금 약속을 잡자’라고 상대방을 독촉한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연말파티에서 깊숙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와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당신의 앞가슴 때문에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다’라고 솔직히 고백하면 어떻게 될까.
거짓말
없이 솔직한 대화만 난무한다면 사회의 어느 구석도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거짓말은 나쁘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지만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인 것을 감안한다면 거짓말을 단순히 나쁜 것으로만 몰 수 없다. 어떤 모습으로 하든 거짓말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 거라지 속에 버려둔 오래된 컴퓨터가
내게는 쓸모 없는 물건이지만 이베이(eBay)에서 어떤 구매자에게는 보물이 된다.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한 M군, 여자친구와 놀러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할 것이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 따지기보다‘인터뷰를 잘하면 장학금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이번에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바란다’라고 거짓말로 받아 친다면 그것이 부자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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