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유진중앙교회 담임)
독일어
수업
유학생으로
선발되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그 일년은 참 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의 산실 스위스, 그 나라의 수도인 베른의 주립대학교로 유학을 간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긴 하지만 그 희망은 마치
꿈 속에서 구름을 붙잡으러 달리는 순진한 소년의 희망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올라갈 수 없는 나무를 쳐다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라도 시원하게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은 마치 지푸라기를 잡는 것 같은 절박함에서
나오는 생각 같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시간이었습니다.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히브리서 구절이 귓전 가까이에서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마음에
평안함이 따뜻하게 찾아옴을 느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지만 독일어 공부는 계속하였습니다. 괴테 문화원에서 가르치는 기초반 선생님은 독일에서 온 마음이 푸근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영어단어와 달리 독일어단어는 알파벳대로 따라 하면 발음은 거의 맞았습니다.
낯선
단어라도 영어보다는 읽기가 더 쉬운 것 같았습니다. 독일어를 배우기 위하여 부지런히 오르내리던 남산의
괴테 문화원과 연세대학교 외국어 학당 덕분에 독일어는 차츰 친숙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가 1521년
보름스 국회에서 파문을 당한 뒤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작센의 프리드리히 선제후의 극적인 도움으로
발트부르크 성에 피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루터는 알프스 북부의 가파른 벼랑 위에 세워진 성 안의 세평
남짓한 소박하고 조그만 방 안에 근 일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책상 하나를 놓고 루터는 독일 역사상
최초로 헬라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1522년 9월에
출판된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일반 신자들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라틴어 벌겟 성경을 사용하였는데 일반 신자들은 대부분 읽을 수 없는 고전에 불과하였습니다.
교회는 성경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일인들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을
출판함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신앙의 무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은 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한다고 붙잡혀 실컷 두들겨 맞은 후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날 밤에 주님은 감옥을
뒤흔드는 지진과 함께 옥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들을 지키던 감수가 이 일을 보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핍박을 받아 감옥에 갇혔던 일은 한 가족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루터가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성 안의 조그만 방에 은둔했던 일년이 채 못되는
그 기간은 독일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또 하나의 큰 역사였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을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독일에서 구텐베르크(Gutenberg
1397-1448)가 발명한 납 활자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납과 주석 등을 녹여 만든 활자를
틀에 고정시키고 당시에 널리 사용되었던 포도주나 올리브유를 짜던 압착기를 이용하여 인쇄기를 발명하였습니다.
인쇄기가
나오기 전에는 한 권의 라틴어 성경을 필사하기 위하여 몇 달씩이나 걸려야 했고 어렵게 베낀 성경은 주로 교회 비치용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일반 신자들은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내용이나 그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습니다.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용으로 모아 만든 라틴어 성경구절을 뜻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따라
외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이 출판돼 널리 보급됨으로 일반 신자들이 쉽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교회가 전통이나 의식의 굴레에 갇혀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신자들이 자신들의 쉬운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 사제가
읽어주는 낯선 라틴어 성경을 들어야 했던 성도들이 이제는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자기나라 말로 읽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신자들의 신앙교육을 위하여 두 가지 교리문답서를 만들었습니다.
1529년에는 장년들을 위하여 대요리 문답을, 어린이들의 성경교리교육을 위하여 소요리 문답을
출판하였습니다.
요리문답은 신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십계명, 사도신경, 주기도, 세례와 성찬 등 기독교의 주요교리를 일목요연하게 묻고 답하는
문답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에게 바로 전달하기 위한 루터의 노력으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넓은 보급을 위하여 인쇄술을
사용하여 많은 독일어 성경을 출판하게 하셨습니다.
먼 옛날 모세가 광야를 통과할 때는 돌판에 십계명을
새기게 하셨습니다. 5경의 성경은 나일 강변에 많이 서식하였던 갈대 줄기를 가공하여 종이처럼 만든 파피루스지
위에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파피루스지보다 내구성 좋고 사용하기에 편리한 것은 두루마리로 만든 양피지에
기록한 성경이었습니다. 그것은 양 가죽을 정제하여 그 위에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이 그 시대 시대마다 말씀의 보존과 전달을 위하여 문화적인 인류의 유산을 소중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유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33).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을 펼쳐 산상보훈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중세 암흑의 시대에 한줄기 진리의 밝은 빛이 마음을
환하게 비추는 것 같았습니다.
한 해가 지나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9월 초순에 스위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10월 강의 수강을 위하여 베른대학교에 등록을 하라는 낭보였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열심히 배웠던 독일어 수업은 스위스 유학의 꿈을 현실세계로 연결시켜주는 긴 다리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