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자
수필가(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원)
겉과
속
찌푸듯한
공기가 바다 쪽에서 촉촉한 안개비를 흩뿌렸다. 온 식구가 차창 밖을 통해 각자의 그림을 그리며 재잘거렸다.
“이런 날은 고기가 잘 잡히겠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쉼을 갖고, 계획하려는 마음들로 분주했다. 그래서 여행의 첫날은 흥분되고 기분이
들떠있었나 보다.
“에게게! 국민주택 같네.” 큰 실망을 안고 열려진 입에서 그저 튀어난 말이었다. 여러 호텔과 고급 집들을 지나 도착한 곳이 고작 볼품없는 집이라니!
“집이
고풍스런 분위기이므로 김치, 된장찌개 같은 냄새 나는 음식은 해먹을 수 없어요.” 했던 아들의 말이 생각나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혹시 집주소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아들에게 확인했다. 아들의 대답도 기운이 없었다.
일주일
머물다 갈 집인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엉거주춤 서있는
남편에게 짐을 집 안으로 옮길 것을 부탁하고 나는 먼저 집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나, 원더풀, 뷰티풀!” 이게
웬일? 연속 온갖 찬사가 쏟아졌다. 깜짝 놀란 채, 실내
장식과 조화된 분위기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좁은
공간을 이용해 배치한 가구의 어울림, 벽과 커튼 천장과 바닥에 이르기까지 정성스럽고 예술적인 감각으로
연출된 작은 예술전당과 같았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수
디자이너의 공교한 솜씨가 겉으로 별볼일 없는 이 집 내부에서 벌어졌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바닷가의 추억을 쌓기 위해 이 곳에 왔던 애당초 목적과는 상관없이, 커피와 차를 마시며 집 안에서 낭만의
시간을 오래 간직했다.
어떻게
이 집 주인은 겉모양에 치중하지 않고 속 모습에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집안에 들어오면 인생의 참뜻을 깨달으라고 은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여정에 무언의 채찍질이요, 감격스런 실천장의
한 장면을 보는 듯싶었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그
동안 나는 겉 사람을 위한 세상 가치관에 거부감 없이 타성이 되어 무심하게 보내지는 않았을까?
이제
세모를 보내는 착잡한 마음, 허나 다시 나의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형식적인 결단이 아니라 꼭 실행된 기쁨을 맛보게 되는, 바로 나에게 주는 도전이다.
예전에는 허접한 것들이 마음 속에 채워진 나를 돌아보고 회한에 젖곤 했지만,
새해에는 나의 속 모습을 새롭게 꾸미고 단장하여 나의 공간에서 속 사람의 아름다움이 풍겨 이웃들에게 기쁨을 주는 전달자로 살수만 있다면, 하는 반짝 감상적인 각오가 아닌 심지 굳은 결단으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