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빙점’을
통해 본 원죄(原罪)
기독교에서는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짓는 자범죄(自犯罪)만이 아니라 인류의 선조인 아담과 하와가 지녔던 그 죄성이 모든 인류 속에 원죄(原罪)로 계속 유전되어 내려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원죄의 문제를 일본의 종교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빙점’이라는 작품을 통해 잘 이해시키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20세 가까운 요오꼬라는 아가씨입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그녀는 외모로나 성격으로나 품성으로나 나무랄 데 없는 지극히 모범적인 소녀로 양부모 밑에서
자랍니다.
성장 과정에서 그녀의 양어머니는, 자기의 친딸보다 요오꼬가 더 우월하다는 것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요오꼬를 모함하고
학대하며 괴롭히지만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그녀는 자신의 내면만 완벽하다면 외부에서 밀려오는 그 어떠한 박해라도 문제가 없다고 자신하면서
꿋꿋하고 고결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요오꼬는 그녀의 죽은 아버지가 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고뇌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떠한
방법이나 노력으로도 지울 수 없는 살인범의 피가 자신의 혈관 속에 흐르고 있다는 사실 앞에 절망하다가 끝내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요오꼬가 자살하기
직전에 양부모에게 남긴 유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능히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나는 결코 나쁘게 살지 않았고, 바르고
선하게 살았으며, 나는 절대로 때가 묻지 않았다는 자긍심에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살인범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에 와서
저는 의지하고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인범이었다는 것은 저에게도 그럴 가능성이 있음을 깨우쳐 줍니다. 아버지 만이 아니라 그 선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매우 악한 짓을 한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 안에 한 점의 죄성도 발견하고 싶지 않았던 건방진 저는 이제 나 자신이 죄 많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내 속에 품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요오꼬라는 이름처럼 빛과 같이 밝게 살려고 온
정성 다하여 힘껏 살아온 이 요오꼬에게도 ‘빙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얼어 붙은 빙점은 바로 ‘너는 죄인의
자식’이라는데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본 적도 없었고, 용서를 빌어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용서를 빌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저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이 무서운 죄를 깨끗이 용서해준다고 말해 줄 어떤 초능력의 권위있는 존재가
절실히 갈망됩니다…”
그가 갈구한 그 초능력의 권위를 가진 존재란 바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속죄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 누구이겠습니까.
하지만 빙점의 저자는 그러한 속죄주가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하기에 그 속죄주를 찾아 발견하도록
강하게 암시만 할뿐 하나님이니, 예수 그리스도니, 속죄니, 구원이니 하는 용어는 한마디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
이미 속죄와 구원의 진리를 터득한 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비 종교인들에게 길을 찾아가도록 돕는 단계적인 절차 때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은 이 세상에 ‘나는 죄가 없다’라고 고개를 높이 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내 책임 한계 밖에 있는 원죄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를 찾아가도록, 아니 그 존재를 발견하지 않고는 도저히 생(生)을 긍정할 수 없을 만큼 죄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대속의 은혜를 통하여 인간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는 기독교에의
귀의를 강하게 암시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