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인생은
결단(決斷)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조언을 얻기 위해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이 무거운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까?”하고 여쭸다.
그러자 아이젠하워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결단을 잘 하시오. 당신의
결단에 따라 미합중국이 번창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습니다.”
케네디는 선배 대통령의 조언을 가슴에 새겼던지 그 유명한 쿠바사건 때
담대한 선택과 결단으로 음흉한 소련을 몰아내고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우리는 인생이란 짧고도 긴 세월을 보내면서 결단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맞이하게 된다. 어떤 결단을 했는가에 따라 행복하고 성공적인 인생으로 살아갈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실패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배우자를 선택하는 엄청난 결단을 한다. 그 결단에 따라 평생을 행복하고
유복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배우자 한 사람 잘못 만나 일생을 고통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결단이다!”고 속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였던 모세는 말년에 백성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놀라운 결단을 촉구했다.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가 너의 앞에 있으니 오늘날 선택하라”고 말이다.
과연
명언이 아닌가?
우리 인생이 가는 길에는 이 네 가지 밖에 없다. 축복된 길로 가든지, 아니면
저주의 길로 가든지,
생명의 길로 가든지, 아이면 죽음의 길로 가든지, 선택하고
결단해야만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리석은 인생들은 무엇이 생명이고 사망인지, 또 무엇이
축복이고 저주인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래서
모세 후계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무사히 진군해 들어갔던 위대한 지도자 여호수아는 그의 생이 다 하였음을 인지하고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면전에 모아 놓고 역시 결단을 촉구했다.
“너희들이
섬기는 신이 참 신이면 그 신을 따르고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인생들을 친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참 신이시면 그 하나님을 선택하라. 나와
내 집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말이다. 그러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앞에서 “우리들도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고 선언하며 대결단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래서 오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
이 종은 혼자서 13년이란 긴 세월을 시애틀에서 이민목회를 하며 보낸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국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한 노회에서 가장 큰 교회를 마련해놓고 당회장으로 돌아오도록 강권했다.
그런데 필자는 그 좋은 조건을 거절하고 지금 시무하고 있는 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이유는
오직 하나,
‘언젠가는 우리 목사님도 우리들을 버리고 가족과 조건이 좋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는 이야기로
교회가 술렁이고 있을 때 그런 분들을 안심시켜 드리려고 어린 나이에 약속한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여러분들이
나를 쫓아내지 않는 한 저는 결코 여러분들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고 한 말 때문이었다. 목사가
강단에서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영적인 지도자라 할 수 있겠는가? 그 한마디
말과 그때 한 결단으로 36년 동안
그 어떤 조건,
그 어떤 좋은 곳에서 오라고 청빙해도 요지부동 한 교회를 지키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봐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이민목회란 모든 면에서 열악하고 부족하지만 한번 한 결단으로 첫 목회지에서 끝까지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 그 어떤 좋은 조건보다도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작은 유익을 따라 하나님도 사람도 쉽게 배신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많이 경험한다. 사람은 사람답게, 신자는
신자답게,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이 세상을 떠났을 때 진정한 눈물 한 방울 흘려 줄 그
사람들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가능한 것이 아니다. 평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사람답게 결단하고 사람답게 살아갔을 때만 가능하다.
인생은
결단이 중요한 것이다.
순간의 그릇된 결단으로 일생이라는 소중한 삶이 흐트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그 같은 소중한 결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 줄 소중한 스승과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