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상원
당선, 36년의 상원의원, 최고령 대통령으로
케네디 보며 대망 키워…오바마 당시 부통령 8년 관록
대권 도전 삼수 끝 마침내
성공…당내 경선서도 역전극
첫 부인과 딸 잃은 애절한
가족사도 극복스토리도 감동
자신의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의
승리로 미국호를 이끌 제 4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그야말로 오랫동안 대망을 키워온 정치인이다.
풍부한 정치 경험과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3수 끝에 대권을 잡은
바이든은 정치 ‘이단아’로 불리며 또다른 길을 걸어왔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바이든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어 ‘조 아저씨’라는 뜻의 ‘엉클 조’(Uncle
Joe)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1942년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 만 77세로, 내년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취임식 기준으로
미 역사상 역대 최고령인 78세에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종전 기록은 70세 7개월이 되는 달에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자동차 영업사원 아버지
둔 ‘흙수저’출신
자동차 영업사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을 정도로 바이든은 그야말로 ‘흙수저’ 출신이다.
어릴 때 펜실베이니아에서
자랐지만, 10살 때 아버지가 일자리를
일으면서 인근 델라웨어주로 이주하면서 델라웨어가 ‘제2의 고향’이 됐다.
하지만 청소년기부터 그는
당시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보면서 큰 꿈을 키웠다고 전해진다.
바이든은 선거운동 웹사이트에서
청소년기와 대학 시절에 많은 이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존 F. 케네디,
로버트 케네디 등을 예로 들고 “나는 그들의 웅변, 신념, 상상할 수 없는 꿈의 순전한 크기에 휩싸였다”고
강조했다.
당시부터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동경하며 대망을 키웠고,
그 꿈은 결국 현실이 됐다.
바이든 후보는 델라웨어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고 이후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해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27살때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첫 입문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27살때인 1970년 뉴캐슬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72년(만 29세)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공화당 현역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미 역사상5번째로 젊은 나이에 당선된 것이자 현대 미국에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이듬해1월 30세의 나이로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
바이든은 내리 6선을 기록하며 36년간
활동했다. 변호사 경력을 살려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고 외교위원회로 옮긴 뒤에는 외교위원장을 세 차례 역임,
외교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그는 의정 활동 기간에
여성폭력방지법과 기후변화 대처 법률 제정을 주도했으며 테러리즘과 대량살상무기 대응 등과 관련한 입법에도 힘을 쏟았다.
1988년에는
두 차례 입원해 뇌 동맥류 수술을 받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대권 도전은 이번이 3번째였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했고, 2008년 다시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돌풍에
밀려 좌절됐다.
그러나 외교정책 분야를
중심으로 한 실력을 인정받아 오바마 대통령의 러닝메이트가 돼 당시 행정부에서8년 간 부통령을 지냈다.
장남 뇌암으로 사망하기도, 슬픈 가족사
그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준비했지만2015년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사망하자 슬픔에 빠져 결국 출마의 뜻을 접었다. 장남은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지낸 인재로, 현직 시절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을 지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와도 친분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은
초반에 고전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세론’을 구가하며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초반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연패하는 극심한 부진으로 대권 도전이 무산될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백인 중심 지역을
벗어나 흑인과 라티노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된 전국 각지 경선이 진행되면서 승기를 잡기 시작, 3월 ‘슈퍼 화요일’대승으로 선두로 올라서는 대역전극을 이뤄내며 3수 끝에 마침내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꿰찼다.
바이든 후보는 정치인으로
화려한 이력을 쌓으며 성공했지만 이면에 있는 안타까운 가족사(史)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1972년 11월7일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뒤인 그해 12월 18일 교통사고로 아내 닐리아 헌터와 13개월짜리 딸 나오미를 잃었다.
아내와 딸은 바이든이
워싱턴에 나와있는 동안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던 길에 변을 당했다.
차에 함께 탄 두 아들 보와 헌터는 골절상 등으로 크게 다쳐 입원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바이든은 당시 충격으로
의원직 사임까지 고려했지만, 주변의 만류로
위기를 넘기고 이듬해 아들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그는 이후 두 아들을
직접 재우고 지켜보기 위해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워싱턴DC
의사당까지 120마일 거리를 기차로 매일 통근하는 지극 정성으로 돌봤다.
그는 의정 활동에 매진하면서도
여동생 발레리와 가족의 도움을 받아 5년 동안이나 홀로 아들들을 보살폈다.
영어 교사였던 현 아내
질 바이든 여사와는 1977년 재혼해
딸을 얻었다.
백인 중에서 소수인 아일랜드계로
가톨릭 신자다. 역대 대통령 중 가톨릭
신자는 역시 아일랜드계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