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마이다스 왕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마이다스 왕에게 낯선 신이 찾아와 소원을 말하면 그대로 이뤄주겠다는 제의를 합니다.
그러자
이 왕은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소원을
말하자 마자 왕이 만지는 모든 것은 다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신이 난 왕은 하루 종일 황금 만드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다가 마침내 사랑하는 딸도 그의 손이 닿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황금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해가 지는 황혼 녘에 절망하며 절규했습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나의 딸 메리의 생명을 돌려주십시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한 모금의
물입니다.
내가 원한 것은 황금이 아닙니다. 지나간 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한 가지
소원만 말하여라.
내가 반드시 들어주마”라고 하신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구할 것 같습니까?
모르긴
하지만 대부분 사랑들이 마이다스 왕과 같이 황금을 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때에 어떻게든 돈만 많이 있으면 행복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미리 내다보셨던 예수님은 그래서 소중한 진리 하나를 남겨 두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12:15)고 말입니다.
사실
황금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허물을 웬만해서는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까지 하고 돌아섰던 베드로도 예수님은 단 한 마디 말씀으로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제자들을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을 그만큼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성도들을,
성도들과 이웃들을 사랑으로 연결시켜 주는 접착제와 같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모래처럼 서로가
흐트러지고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랑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한 경찰관 부인은 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얼마나 이혼을 강하게 결심하였던지 위자료 따위는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남편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믿음이 사라지게 되면 사랑은 모래성처럼 자연스럽게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가치입니다.
아울러 이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명령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홍수로 쓸어버리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함께 말입니다. 그 이유가 실로 무섭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인간들이 믿음에서 떠나 자기들의 쾌락과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시고 사람 만드셨음을 한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그 무서운 노아의 홍수가 임해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는 다 죽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되고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돈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많아도 믿음이 없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보기 어렵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 것입니다.
지혜자는 시대의 흐름을 인지하고 대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또 사라지게 하는 현상이 바로 말세입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가 거센 물줄기를 타고 오르듯 오늘 우리들도 믿음의 줄을
굳게 잡고 사람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