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 문인협회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우리는 강할 때 아주 강하다가도 약해질 때는 대야의 비누거품이 물 한 방울에도 견디지 못해 밑으로
가라앉듯 그렇게 약해질 때가 있다.
그 때가 언제일까.
첫째는 자연재해로 인해 그 많은 재산을 날려 버렸을 때와 세월을 잘못
만나 갑작스러운 ‘숙청’이란 권력자의 악정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겼을
때, 예기치 않았던 사업실패로 지니고 있었던 모든 소유물을 잃어버렸을 때, 그리고 심각한 병으로 건강을 잃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라 하겠다.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왜 생겨났을까. 빈곤이 온 인류의 공동 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상의 인구가 71억명이나 된다. 이 중에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없는 것이 아니라 밤에는 비바람 치는 곳에서
잠을 청해야만 하는 인구가 부지기수임은 가난이 무서운 적임을 말해주고 있다.
세계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인구 중 절대빈곤 인구, 즉 하루에 2.50 달러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30억이나 된다고 한다.
게다가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빈부 차이가 줄어들기보다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힘든 문제는 국가간 불평등보다도 국가내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가난한 국가에서 하루 2만2,000여명의 어린이들이 굶주려 사망하고 있다.
빈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가난 다음 가는 문제가 질병이다. 질병은 넓은 의미에서는 극도의 고통을 의미하는데‘질환’이라고도
하고 ‘병’이라고도 한다.
그 종류는 3만가지가 있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평생 살아가면서 여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우리라 생각할 때 이것도 물체가 있는 곳에
그림자가 따르듯 적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질병의 문제는 생로병사의 여정 속에서 어떤 질환이든
누구나 이수해야만 하는 필수 과목이라 하겠다.
필자도 팔십이 훌쩍 넘어서인지 전립선이란 질병으로 인해 이
원수와 매일 시달리다 보니 하루하루를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내 인생 남은 여정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니 이것 역시 나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원수는 다음 원수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다.
세 번째로 맞닥뜨리는 원수가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죽음이란 원수이다.
오죽하면 성경은
이 원수가 문 앞에서 나를 삼키려 한다고 했을까(시편 56:2). 그러기에
그 원수는 나와의 거리가 한 걸음밖에 되지 않는(사무엘상 20:3) 원수로 바로 내 곁에서 늘 따라다니며 위협하는 원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염려가 안 되는 것은
나 대신 원수를 갚아줄 분이 계신다는 점 때문이다.(히브리서 10:30). 성경은 우리에게 너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고(베드로전서 5:7) 또 너의 길도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다(시편 37:5).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단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곧 스스로 있는 자 이시기(I
am that I am, 출애굽기 3:14)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존자(自存者, Independent)이심을
말한다. 여기에 반에 우리는 의존자(依存者,
Dependent)라, 꼭 기대고 의지해야 할 절대자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듯 우리도 우리 나름으로 언덕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언덕이
무엇일까. 바로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했다(마태복음 11:28).
이 무거운 짐이란 이미 위에서 지적한 빈곤, 질병 그리고 죽음이다.
바라기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내가 의지해야만 하는 나의
언덕으로 삼고, 그의 인도하심에 따라 남은 생이 푸른 초장, 맑은 시냇
물가와 쉴만한 물가로 인도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