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 목사(유진중앙교회 담임)
스위스를 향한 꿈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횃불을 밝힌 땅이 독일이라면 개혁의 꽃을 피운 곳은 스위스였습니다.
국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독일과 스위스는 정치, 종교, 사회, 문화의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습니다.
스위스 북부지방인 취리히, 바젤시의 언어도 독일어의 큰 영향을 받아
독일어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발음과 뜻을 지닌 단어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독일과 접경하고 있는 취리히에서는
쯔빙글리가 개혁의 가치를 들고 로마 가톨릭과 싸웠고 제네바에서는 칼빈이 개혁신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제네바에서
칼빈의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스코틀랜드와 북유럽 등지로 흩어져 개혁신학사상을 전하였습니다.
훗날에는
신대륙 미국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한국에 복음을 전해준 장로교 선교사님들은 대부분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분들이었습니다.
독일의 루터와 스위스의 칼빈은 성경중심의 신앙을 강조하였습니다.
전통과
의식중심의 교회생활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의 검증을 받은 믿음의 삶이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생활임을 밝혔습니다.
긴
겨울 동안 알프스 산정에 깊이 쌓인 눈이 따뜻한 봄 햇살에 녹아 골짜기를 푸르게 하고 아름다운 꽃들로 산하를 수놓은 것처럼 독일과 스위스의 개혁주의
신학사상은 유럽과 신대륙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신학사상의 흐름을 이어받은 선교사님들이 대한민국에
전해준 성경중심의 경건한 신앙의 유산은 한국교회가 받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서울을 위시한 전국의 대도시에
세워진 교회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조그만 시골마을에 세워진 농촌교회의 소박한 신자들에게도 개혁주의 신앙사상이 스며들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던 농부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야학이 세워지고 성경 구락부가 조직된 것도 성경중심의
신앙생활을 독려하기 위한 종교 개혁자들 사상의 열매였습니다.
교회를 찾아 나오는 성도들이 성경책을 들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전통입니다.
미처 성경을 지참하지 못하고 나온 사람들을 위하여 교회
출입문 쪽에는 여러 권의 성경책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이 성도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도록
교육한 선교사님들은 참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누린 큰 축복 중의 하나는 바로 성경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독일과 스위스의 위대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15~6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떠나갔지만 그분들이 외쳤던 성경중심의 신학사상과 경건한 신앙을 이어 받은 후손들이 살고 있는 그 삶의 현장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더 큰 소원이라면 그분들이 남긴 책도 읽어보고 싶고 그분들이 목회하였던 그 교회들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여러 가지 기도 중에서 빠짐없이 드렸던 기도는 종교개혁의 시발지인 유럽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안개 속을 걷는 발걸음처럼 희미하게 느껴졌습니다. 인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교단의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위스 베른 대학에서 연구할 수 있는 장학금을 수령할 한 학생을 찾고 있는 데
혹시 의향이 있는지 묻는 것이었습니다.
몇 사람의 후보자들을 스위스 개혁교단에 추천하면 그 곳에서 최종선발을
하기로 하였다는 설명을 곁들어 주었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잠시 끼워 넣었던 기도였지만 주님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유적지 유럽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한 기도는 소리 내어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황당해 보이는 기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난 이튿날부터는
기도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개인기도 시간이 되면 종교개혁의 나라 스위스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달라고 제일먼저 조용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동안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음은 조바심이 일어났지만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년 쯤
지났을 때 그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최종선발 작업이 진행 중이긴 하지만 전 목사가
결정될 것 같다는 낭보였습니다. 봄이오면 새싹이 움트는 것처럼 유럽에서 공부할 수 있는 희망의 싹이
싹트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새벽기도시간
뿐 아니라 낮에도, 저녁에도 틈난 나면 스위스 유학의 문을 두드리는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고맙게도 아내도 기도에 합류해주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의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나..." (마 7:7) 선발될 줄로 믿고 유학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대학교가 위치한
베른 도시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곳입니다. 대학교의 강의도 독일어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일 베른 대학교 장학생으로 선발이 된다면 독일어는 반드시 익혀야 할 언어입니다. 서울 남산 밑에 위치한 독일 괴테 문화원을 찾아갔습니다.
학생으로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독어강좌에 참석하였습니다. 인천에서 서울역까지 주로 전철을 이용하였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서울 전철역으로 달려와 인천행 전차를 타면 그날 배운 독어복습의 시간으로 이어졌습니다.
헤드폰을 끼고 단어를 열심히 암기하다 보면 내려야 할 주안역을 지나쳐 인천 종창역에서 되돌아오곤 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유학을 생각하면 즐겁기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