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인간의
한계
2019년 10월 14일 오후 2시 39분쯤 전남 곡성군
한 농로에서 아내 A(62)씨가 후진하던 남편 B(64)씨의 트럭에 치여 숨졌다.
경찰은 B씨가 좁은 농로를 후진해 빠져 나가려다 농로에 앉아 쉬고 있던 A씨를 발견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트럭 적재함에
실린 벼 수확용 마대자루 때문에 B씨가 후방 시야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적재함에 물건이 많이 실려 있더라도 사이드 미러로 장애물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안타깝지만 남편 B씨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로 보고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 세상에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사랑하는 아내를
치어 죽이고 자신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인생의 한계다. 어디 이뿐인가? 30대가 뒷마당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며 연습을 하는데 순식간에 나타난 3살 먹은 딸이 골프채에 머리를 맞아 즉사하는 사건도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렇듯 뜻밖에 돌발적인 사건이나 재해가 발생했을 때 ‘Accident’란 말을 쓴다. 눈 깜빡할 순간에 아내와 딸을 잃은 이 사람들은 사는 날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란히 부부가
걸어가는 것만 봐도, 3살짜리 어린 여아만 봐도 그들의 가슴은 갈가리 찢겨 나가는 고통을 스스로는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기 아내를 자동차로 치어 죽일 사람이 어디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살짜리 귀염둥이 딸의 머리를 골프채로 때릴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처럼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왜 그런가?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수하고 그래서 화를 당하고 그래서 아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완전한 것처럼 이웃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고 이웃의 잘못을 악착같이 판단하고 원수를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날마다 경험한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강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가운데서 삐거덕거리는 노 젓는 소리만 적막하게 들려오자 소크라테스는 사공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철학이
무엇인지 아는가?”라고 말이다. 그러자 사공은 한번 고개를 돌려 소크라테스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배가 강 한 가운데쯤 갔을 때 갑자기 사공은 배를 기우뚱하여 멍하니 앉아 있던 소크라테스를 강물에 빠뜨려버렸다. 갑자기 강에
빠진 소크라테스는 허우적거리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한참이나 내버려 두었다 마침내 사공이 소크라테스를
건져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던졌다.
“수영도 하나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철학은 무슨 개똥 철학이냐?”고 말이다. 문자 그대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제자들 앞에 나타난 소크라테스가 가르친 첫 마디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었다
한다.
그렇다. 불행하게도 오늘 우리들은 세상 이치는 다 아는 척하면서도
꼭 알아야 할 자신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래서 남을 판단하고 욕하고 돌아선다. 결국 그렇게 해봐야 허망하고 외로운 인생길에서 초라하게 홀로 남고 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고 완전하지도 못하다는 우리 자신을 말이다. 그래서 이웃들에 관해 조금은 관대하고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 언제 재난이라는 Accident이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결국 그 명령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계절이다. 따뜻한 사랑으로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