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덕이
있는 사람
손자병법에 ‘맹장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전쟁터를 승리로 이끌려면 덕이 있는 장수가 돼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 인생도 전쟁터와 같다. 미중
무역전쟁을 봐도, 한일간 갈등을 봐도 인생이 바로 전쟁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덕장을 보기는 어렵다.
사도 베드로는 성미가 급하고 다혈진인데다 너무 말을 경솔하게 하는 흠이 많아 실수를 많이 한 제자였다. 그러던 그가 인생 말년에 참으로 큰 교훈을 주는 말씀 한마디를 남겼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라!’(베드로후서1:4) 백 번, 천 번
옳은 말씀이다.
복잡한 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이 빛날 수 있도록 덕을 세워야 하며 그와 같은 덕이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50여명의 총회 리더들과 하와이에서 4박5일 동안
컨퍼런스를 하고 돌아왔다.
목회자들이 함께 모이면 저마다 목회일선에서 겪었던 아픈 마음들을 털어놓게 된다. 이구동성으로
상처를 입었고 가슴 아팠던 일들을 쏟아 놓는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땅이 엄청 넓고도 큰데 목회자들이 당한 고통에는 한결
같은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인들로부터 받은 아픈 상처가 다 ‘말’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말을 그렇게도 쉽게 하고 또한 말로 그렇게 상처를 주는 것일까? 물론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되지 않아
설교를 하다 생각과는 다르게 말을 할 때도 많이 있었다.
한 번 설교를 하는데 원고가 10페이지
정도 되고 그 원고에 사용된 낱말은 대략 2,900개 정도가 된다. 그러니
어찌 실수가 없겠는가?
그런데 어떤 이는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설교하다가 무엇을 잘못 하는지 일일이 세어보고 기록했다 설교가 끝나면
찾아와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한 번은 젊은 여성 성도가 찾아왔다. “목사님, 암은
바이러스가 아니고 세포예요.
목사님과 같이 무식한 목사 밑에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다음
주부터 이 교회에 안 나올 거예요?” 하면서 가버렸다.
하지만 덕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 가슴이
먹먹해 질만큼 감동을 주고 힘들고 어려운 목회지만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한다. 개척초기
필자를 신학대학 문 앞에도 가지 않은 ‘가짜목사’라고 소문을
퍼트리고 이민국에 추방시키라는 투서를 넣은 사건도 있었다.
그러자 교인들 절반이 들고 일어나 당장 쫓아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신학교 문 앞에도 안간 목사님이 저렇게 설교를 잘
하신다면 신학교를 졸업하면 얼마나 더 잘 하시겠습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들이
신학대학에 보내드리면 될 것 아닙니까?” 라고
말이다. 그 말 한 마디에 참으로 감동을 받았다.
필자는 36년 동안 그런 분들과 함께 너무나도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이 바로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그렇게 덕이 많았다고 한다.
한 번은
고관대작들을 다 모아 놓고 큰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때마침 강한 바람이 불어와 모든 횃불이 다 꺼지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왕비가 비명을 지르며 “어서 불을 밝히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어느
신하가 불이 꺼진 틈을 타 자신을 겁탈했다는 것이다. 그 놈의 갓끈을 뜯어 쥐고 있으니 어서 불을 밝혀 그 놈을 잡으라며 비명을
질러댔다.
그때 세종은 어명을 내렸다. “불을
밝히지 말라.
그리고 모두가 다 자신의 갓끈을 뜯어버려라.” 그렇게 하여 연회는 끝났다. 세월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세종은 가장 믿는 신하를 데리고 전장에 나갔다 적의 독화살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바로 그 순간 그 신하가 재빨리 세종을 감싸 안고 자신이 그 화살을 맞았다. 숨을
헐떡이며 세종의 품에서 죽어가던 그는 “대왕이시여, 이 미천한
소신을 용서하시어 대왕을 위해 죽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왕비를 겁탈한 나쁜 신하였습니다. 소신을
용서하여 주옵소서!”하며
절명했다.
덕으로 신하를 살려주었더니 그 신하가 대왕의 목숨을 구했던 것이다. 우리들도
덕으로서 사람을 대하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야겠다.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더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