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
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문인협회원
하나님의 비밀과 사람의 비밀
비밀은 알고 있는 사람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비밀이 될 수 없다.
영어 회화에도 “이건 비밀이니 꼭 너만 알고 있으라”는 말을 “This is just between you and I”라 한다. 너와
나만 알고 있어야지 입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비밀은 히브리어로‘취다(Chidah)’라 하고 헬라어로는‘무스테리온(μυστηριον)’이라 하는데 ‘입을
다문다’는 뜻의 동사 ‘무에오(μυεω)’에서 왔다.
비밀 유지를 위해 왜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될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유익을 챙기는데 그 비밀이 새나가면 자기 유익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기 때문일 것이다. 곧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성공의 길이요, 출세의
길이라, 되도록 남에게 알리지 않고 모든 과정을 비밀리에 추진하려고 한다.
비밀은 크게는 나라의 비밀이 있고, 적게는 사(私)적인 비밀(Privacy)이 있으며, 회사는
회사대로 사업체는 사업체 대로 그 나름의 비밀을 갖고 있다. 비밀은 이렇게 어디에나 있다.
종교적으로 보면 비밀은 크게 ‘하나님의 비밀’과 ‘사람의
비밀’로 나뉜다. 사람의 비밀은 항상 제한을 두고 있지만, 하나님의 비밀은 오히려 많은 사람이, 누구나가 다 알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형제들아 여러분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숨은 진리가 하나 있는데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고
했다(로마서 11:25). 바로 이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다.
이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데 있고 그에게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했다(골로새서 2:2-3). 사도 바울은
이것을 복음의 비밀이라고 했다(에베소서 6:19).
복음을 헬라어로 ‘유앙게리온(ευαγγελιον)’이라 하는데 영어로 ‘천사(angel)’라는 뜻을 가진 ‘유앙게로스(αγγελος)’에서 왔다. 천사는 항상 기쁜 소식만
전해주는데 암담한 나날을 병으로 신음하며 울며 애타하는 것이 우리 일생이고(전도서 5:17), 여기에서 우리를 건져 내려고 독생자를 보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요한 1서 4:9).
독생자를
보내 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고, 주의 구속사업은 하나님의 비밀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기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했다(고린도전서 1:18). 십자가를 원어로 ‘스타우로스(σταυρος)’라 하는데 ‘세우다’의 뜻을 지닌
원어 ‘히스테미(ἱστημι)’에서
왔다. 죄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세워 죽음의 뿌리가 되는 죄의 삯이(로마서 6:23) 잘렸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신학은 유형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인 형이하학(形而下學)이 아니라 무형을 대상으로 하는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 먼저 내세워야만 하는 전제가 앞서지 않으면 하나님을 시인할 수가 없다. 시인은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기에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로마서 10:9). 이렇게 믿음과 시인은
같은 나무의 열매라 할 수 있다.
우리를 가리켜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라고 말한 것도(아모스 4:11) 같은 맥락이다. 불과
물은 환난의 대명사로 환난의 극치는 죽음이다. 소방관들이 화재현장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불 속에
있는 사람을 빼내듯 성경의 주제도 ‘빼내는 일’로 이것을
주제를 삼고 있다.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도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여 불 가운데서 빼내는 일이다. 이 하나님의 비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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