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두 마법사
나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즐겨 듣는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음악 역사상 처음으로 성악을 겸비한 교향곡이다. 특히 4악장의 독창과 합창을 듣노라면 에너지가 솟는다.
미국에 온 다음 해 여름이었다. 시애틀 유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큰 애가 메로우스톤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이 주일간 합숙하며 연습을 마쳤다.
드디어
축제 마지막 날이었다. 가족과 관중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연주했다. 그때 나는 연주하는 아이 모습만 대견스러워
지휘자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비창을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로 감상했다. 내가 좋아하는 카라얀이
아닌 페트렌코(Kirill Petrenko)가 지휘자였다.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 지휘자에 따라 색다른 감동을 준다. 특히 페트렌코 연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중에서 나는 130여년 전통의 베를린 필하모닉을
꼽는다. 수석지휘자로 1887년 뷜로를 비롯하여 카라얀(1954-1989),
아바도 (1990-2002), 래틀 (2003-2018) 등이 거쳐 갔다. 얼마 전, 젊은 페트렌코가 수석지휘자
지휘봉을 이어 받았다. 내가 눈길을 준 지휘자여서인지 마음이 간다.
지난 8월 23일,
그의 취임 음악회가 열렸다. 연주곡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토벤 교향곡9번, 합창 교향곡이었다. 뜻밖의 선물로 감격스러웠다.
페트렌코 연주를 접할 때마다 '그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지휘한다면 카라얀과 어떻게 다를까…'라고 생각했었다.
교향곡 9번은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Ode of Joy)'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4악장의 시구(詩句), 인류애를 부추기는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70년대 초, 스페인계 가수 미구엘 리오스가 그 4악장을
편곡하여 부른 팝송, 환희의 찬가(Song of Joy)가 인기였다.
지루한 입시 공부 중에 간간이 들었던 그 선율은 나를 사로잡았다. 힘을 부추겨 주는
시원한 샘물이었다.
세월에 따라 레코드 LP 음반, 카세트테이프,
CD와 DVD로 음악을 감상해왔다. 클래식
음악감상실도 까마득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세계 어디에서나 실시간으로 보는
좋은 세상이다.
카라얀은 오케스트라와 관중을
자기에게 집중시키는 강한 카리스마가 있다. 관중과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시선의 소실점이 카라얀이다. 흐트러짐이나 빈틈이 없다.
내공이 강건한 완벽한 모습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지휘에
몰두하는 카라얀의 흑백사진 판넬이 인기였다. 심지어 그 판넬에 문안 인사를 했다던 유명한 음악인도 있다. 나만 좋아한 카라얀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세대에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페트렌코의 취임 음악회를
보고 나니, 내가 카라얀만큼 페트렌코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의 초점은 당연히 페트렌코였다.
또, 4악장의 중요한 독창 중 하나인 베이스 파트를 눈여겨보았다. 베이스 독창자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성악가 연광철이었다. 한국인으로서 은근히 자랑스러웠다.
기대했던 대로 무난하게 본인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오케스트라 선율에 동화(同和)되어 매 순간 바뀌는
페트렌코의 표정이 실감 난다. 오케스트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몸짓이 자연스럽다. 단원들이 직접 뽑은 수석지휘자여서일까. 페트렌코와 함께 연주에 올인하는 단원들의 모습이 활기차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하나 된 완벽한 그림 속으로 나도 모르게 끌려 들어간다.
음악뿐 아니라, 조직이 움직이는 곳에는 어디든지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는 조직원들의 여러 생각을 하나로 엮어내며 조직을 이끌어 간다. 지휘자는 온갖
악기에서 제각각 쏟아져 나오는 음량과 음색을 조화롭게 모으는 리더이다.
카라얀이 풍기는 '나를 따라와'보다는 페트렌코의'함께 가자'라는 손짓에 마음이 끌린다. 나름의
카리스마를 지닌 카라얀과 페트렌코는 연주자와 관중, 작곡가의 마음을 아우르는 마법사이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새롭게 출발한 페트렌코의 연주를 기대한다.
다 함께 부르는 축복의 노래,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