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경
교수, ‘정절’을 통해 재구성된 조선의 역사 해설
워싱턴대학(UW) 한국학 도서관이 한인 교양프로그램으로 매달 마련하고 있는 북소리(Booksori)에서 ‘정절’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지난 18 일 열린 10 월 행사의 강사는 UW 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조희경 교수였다.
조
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는 아니지만 평소 관심이 많았던 여성의 문제를 다뤄볼 생각으로 올해 출판된 <정절의
역사: 조선 지식인의 성 담론>(이숙인 저)을 결정했고 ‘여성의 성(性)문제로 본 조선의 역사’를 다뤘다.
<정절의
역사>는 ‘조선 지식인의 성 담론’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이는 이 책이 여성의 정절을 둘러싼 역사이지만
여성이 남긴 기록의 역사가 아니라, 남성 지식인들이 생산하고 기록한 담론의 현재적 재구성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유교를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 가족과 국가의 여성을 관리하기 위한 이념 가운데 하나는
‘정절(貞節)’이었고, 그 반대
개념이‘실행(失行)’이었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와 범위는 명확한 것이 아니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조선 지식인들의 토론을
야기했다.
우선
‘정절’이라는 단어는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이 아니고, 그 단어 자체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일례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정절’에서 ‘정(貞)’의 의미 영역은 조금씩 달라졌고, 다른 한자들과 결합하면서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해내곤 하였다.
‘정(貞)’이 ‘절(節)’과 결합되면서 단순히 한 남자에게 충실한 여성의 성적인 순결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 관계들에 대한 충실성을 의미하는 사회적 의무 개념도 포괄한 개념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절 개념과 예들은 <삼강행실도>를 비롯한
다양한 서책들을 통해 교육되고 유포돼 재생산됐다.
‘정절’의
반대 개념으로‘실행(失行)’은 ‘절개를 잃다’는 의미의 ‘실절(失節)’과 동의어로 쓰였고, 정절을
장려하는 한편 ‘실행’을 정의하고 처벌하는 것은 조선시대
여성을 관리하는 중요한 기제로 사용됐다. 특히 남성의 실행과 달리, 여성의
실행은 종종 법의 영역을 벗어나 혹독한 가부장제의 심판을 받았다.
조
교수는, 강연의 제목을 ‘정절, 누구의 무엇을 위한 욕망인가?’로 정한 것처럼, 조선시대의 정절은 단순히 여성이 지켜야 될 덕목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여러 층위의 다양한 욕망들의 복합체로 봤다.
여성의 정절은 그 범위를 벗어나 남성이 가져야 할
군주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충(忠)’의 개념으로 확장되어 투영되었고, 집안 내 한 여성의 정절을 통해
가문의 명예를 세우고자 한 가문이나 가족의 욕망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집안의 여성의 실행을 정쟁에 이용해 반대 세력을 정권에서 제거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여성의 실행과 불교를 연결시켜 고려왕조까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를 타파하고 유교사회로서의 새 왕조 조선을 정립하고자 한 국가의 욕망도
있었다.
조
교수는 결론적으로 이러한 복합적인 주체들과, 그 주체들의 층층이 쌓인 다른 욕망들이 ‘조선시대 정절’이라는 문제를 다각도로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북소리에는 수필가인 안문자씨와 의사 출신인 장석주ㆍ이승찬씨, 현재 시애틀에
방문학자로 와있는 서울대 법대 정상조 교수, 이길송, 김인배씨 등이 참석했고,
‘정절’과 ‘여성’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여 흥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