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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3 03:53
제주 4·3의 비극, 목숨 걸고 문학에 담아 알린 문인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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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시애틀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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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치하에서 제주4·3 알린 현기영·이산하, 재일조선인작가 김석범 "섣부른 화해보다는 진상 규명 더 필요해"
'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이산하 장편서사시 ‘한라산’ 중에서)
올해 '제주 4·3' 70주년을 맞아 정부, 시민단체, 종교계 등 각계가 민족의 상처를 위로하고 역사의 비극을 넘어서 화해를 모색하려 하는 등 분주하다. 하지만 한때는 '폭동'으로 불렸다가 제주 4·3항쟁, 4·3사건 등 여전히 제대로 이름을 부여받지 못한 이 사건을 제일 먼저 목숨 걸고 일반인들에게 알린 것이 독재정권 하의 문인들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1~2살의 어린아이까지 학살되고, 때로 살기 위해 가까운 친구나 친척을 죽여야 했고, 그 후로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마을에서 살아야 했던 참극 속에서 제주도민들은 침묵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드러내지 않았다 해서 그들 가슴 속의 피맺힌 고통과 억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고하게 2만5000명에서 3만명이 사망한 이 사건의 억울함을 제일 먼저 드러낸 것은 언론이나 학술 등이 아닌 문학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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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을 다룬 문학작품들©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제주 4·3의 진실 드러낸 '순이삼촌'과 '한라산'
제주 4·3의 참상을 가장 먼저 알린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삼촌'(창비)이다. 1978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순이삼촌은 1949년 1월16일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모델로 삼아, 학살 현장에서 살아나온 순이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제주에서는 남녀 구별없이 먼 친척어른을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데, 순이삼촌은 (작품 속에서) 30년전 남편이 공비로 몰리는 바람에 수십명씩 옴팡밭에서 총살당하지만 시체 무더기 속에서 까무러쳐있다가 살아돌아온다.
그 난리 통에 어린 두 자녀를 잃고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한 순이삼촌은 자신이 일궈먹던 옴팡밭에서 총살당한 시신들을 치운 후 어린 오누이의 무덤을 만들고 그 밭을 30년간 일구며 산다. 하지만 총소리 환청을 듣는 등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밭에서 약을 먹고 자살한다. 현기영은 4·3사건의 참혹상과 그 후유증을 고발함과 동시에 30여 년 동안이나 묻혀 있던 사건의 진실을 문학을 통해 공론화했지만 이 작품 때문에 고문당했고 책은 금서가 됐다.
이산하 시인은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통해 4·3의 참상뿐 아니라 배경과 원인까지 짚어내려 했다. ‘한라산’은 1987년 3월 사회과학 무크지 녹두서평 창간호에 실린 장편 연작시로, 당시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지됐던 제주 4·3사건을 '미 제국주의에 맞선 인민들의 무장투쟁'으로 규정했다. 이 작품으로 인해 무크지 필자들은 대부분 수배됐고 고문당했다. 시인 이산하도 "남한을 미제국주의의 식민지 사회로 규정하고 무장 폭동을 민족해방을 위한 도민항쟁으로 미화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4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인 1988년 노태우정권 출범 특사로 풀려나왔다.
이 작품은 필사본으로 학생들과 문인들 사이에서 읽히다가 16년만인 2003년 단행본 시집으로 출간됐다. 그러다가 최근 다시 "내용이 너무 강하다"면서 인쇄소가 인쇄를 거부해 삭제한 부분까지 모두 되살린 복원판으로 출판사 노마드에서 출간되었다.
◇해외에서는 ‘화산도’출간…자료 부족, 금기 때문에 4·3 문학화 여전히 어려워
재일조선인작가인 김석범의 ‘화산도’(보고사)는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 제주 빨치산들의 무장봉기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의 해방직후를 다룬 장편대하소설이다. 번역판 원고로 2만2000여장, 총 1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제주도뿐만 아니라 서울과 목포, 오사카와 교토, 도쿄 등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빨치산들의 무장투쟁 자금의 유입 경로, 재일동포들의 실상과 일본공산당과의 관계 등도 담았다.
그간 한국문학은 '순이삼촌'과 '한라산', 그리고 '화산도' 등을 제외하고 4·3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자료가 많지 않고 미국이 배후라는 점이 '금기'로 작용해 작가들에게도 다루기 힘든 소재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문학계는 설명한다.
그간 국내에서 4·3관련 자료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1980년대 이후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해 4·3 피해자 증언을 채록한 김봉현의 '제주도 피의 투쟁사', 국내외를 통틀어 최초의 4·3논문으로 평가받는 존 메릴의 1980년 하버드대 석사학위 논문 '제주도 반란', 김봉현·이민주 공저의 '제주도 인민들의 4·3 무장투쟁사' 등이 해외에서 나왔지만 그나마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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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제주4·3사건 관련 문학작품들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최근에는 70주년을 맞아 제주 토박이로 오랫동안 4·3을 시로 표현해온 시인 김수열의 시선집 '꽃 진 자리'(걷는사람), 한국작가회의 소속 90명 시인의 시를 모은 '제주 4·3 70주년 기념 시 모음집'인 '검은 돌 숨비소리'(걷는사람)이 나왔다. 4·3 유격대장 김달삼 얘기를 다룬 강기희 소설 ‘위험한 특종’(달아실)도 최근 출간되었다.
하지만 문학계에 따르면 문단 내에서도 중간적 입장의 오성찬 소설가, 제주4·3사건을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으로 보는 현길언 소설가 등 여전히 4·3을 바라보는 다른 입장이 존재한다.
한 문단 관계자는 "이는 한국근현대사 속 4·3 사건의 양상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그로 인해 개개인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면서 일각에서 시도하고 있는 '화해와 용서'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한다"고 했다. 이산하 시인 역시 "제주4·3은 피해자와 가해자 가릴 것 없이 개인의 인간성과 인간관계, 그리고 제주 공동체까지 파괴했다"면서 ”용서와 화해에 앞서서 진상규명이 더 필요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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