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먹거리 확보 위한 'M&A'·적기 투자 '빨간불'
'뉴삼성''·계열사간 사업 재조정도 차질 불가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서 삼성그룹은 당분간 비상경영 체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삼성은 ‘옥중경영’을 통해 이 부회장의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지만 브랜드 가치 하락과 투자결정 지연, 인사 적체로 인한 조직 활력 저하 등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신의 한수’였던 투자 타이밍, 지속 가능할까
이 부회장의 공백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그동안 ‘신의 한수’로 불려왔던 삼성의 투자 타이밍이 계속 지켜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삼성전자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공장 증설에 1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워낙 방대한 규모의 투자여서 전문경영인 입장에서는 선뜻 결론을 내리기 힘든 문제다.
지금까지 삼성이 일반적인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전권을 위임해 왔지만 대규모 투자는 이건희 회장 등 총수의 결단에 따라 움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에 매출 61조원, 영업이익 14조700억원을 기록했다. 세계 IT업계 양대 산맥인 애플과 인텔을 모두 앞지르며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삼성전자의 ‘어닝 서프라이즈’는 반도체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분기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은 8조원으로 전체 영업이익의 57%를 책임졌다.
하지만 반도체가 항상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시계를 2012년으로 한번 돌려보자. 당시 삼성전자는 상반기에만 14조원을 투자했고 이 가운데 9조7000억원이 반도체 몫이었다. 하지만 당시 반도체 부문의 이익은 휴대폰 부문의 6분의 1수준에 그쳤다.
반도체 공장은 10억달러가 넘는 거액의 투자가 필요하고 건설부터 가동까지 최소 2년이 소요된다. 자칫 예측을 잘못한다면 공장을 지어놓고도 놀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수요가 증가하는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면 소위 ‘대박’을 칠 수 있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2012년 중국 시안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키로 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아직 바닥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일부에서는 투자 시점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시장 상황이 좀더 나아진 이후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가격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고 시안 공장 가동을 앞둔 2014년 경에는 시장 분위기가 바뀌어 있었다.
삼성전자는 또 2014년 10월 15조원을 투자해 평택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메모리 반도체’가 없어서 못 파는 요즘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따로 없다.
빛의 속도로 경쟁이 이뤄지는 지금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R&D)이 조금만 뒤처지면 그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다.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의 몰락이 대표 사례다. 세계 1위에서 아무도 찾지 않는 휴대폰 업체가 되기까지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애플의 아이폰은 2007년 출시됐고 당시 노키아 직원은 12만5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스마트폰을 내놓지 못하면서 7만6000명을 해고했고 2013년에는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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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 M&A ‘올스톱’, 4차 산업혁명·AI 시대 대비 우려도
이 부회장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대목은 바로 인수합병(M&A) 분야다.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삼성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M&A를 추진했다. ‘속도’를 따라 잡기 위해 자체 기술개발과 육성을 고집해 오던 전략을 과감하게 수정했다.
M&A는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됐다. 지난 2014년 8월 인수한 IoT 플랫폼 업체인 스마트싱스는 스마트홈 플랫폼 스마트싱스와 사물인터넷 플랫폼 아틱으로 연결됐다.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삼성 페이는 2015년 인수했던 모바일 결제전문업체 루프페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었다.
지난해에도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조이언트와 인공지능(AI)플랫폼 개발업체 비브 랩스도 인수했다. 모두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이다.
결정판은 지난해 11월 인수한 미국의 자동차 및 홈 오디오 분야 전문업체 하만이었다. 인수 총액이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달해 국내 기업의 해외기업 M&A 사상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삼성이 이처럼 왕성한 식욕을 보이자 구글의 성장전략을 벤치마킹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KT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구글은 2001~2014년 상반기까지 159개 기업을 공식적으로 인수합병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삼성의 M&A 시계는 멈췄다. 올 들어 삼성전자는 일부 지분투자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하기도 했지만 지난해와 같은 대형 M&A는 전무한 상황이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실탄을 확보하고 있다"며 "최근 행보로 미뤄볼 때 올 들어 삼성전자의 M&A가 실종된 것은 이 부회장의 공백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뉴삼성’·계열사 사업조정도 중단 위기
이 부회장은 지난 3년간 '뉴삼성' 만들기에 주력해왔다. 직급을 단순화하고 수평적 호칭을 사용하도록 했다. 10월에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올라 책임경영을 시작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조직 문화를 바꾸는 작업은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와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현재 어수선한 삼성 분위기를 감안하면 조직 문화 개선 작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등 DNA’ 이식 작업도 힘든 상황이다. 삼성은 세계 1위로 등극한 삼성전자의 노하우를 다른 계열사로 확산하는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사장단 인사가 중단되고 임원 인사 역시 최소화되면서 이같은 작업도 제동이 걸렸다.
사업 재조정도 중단됐다. 삼성은 1분기에 계열사간 중복된 사업을 한 곳으로 일원화하고 불필요한 사업은 중단하는 사업 재조정을 실시해 왔다.
2014년 삼성SDS를 시작으로 제일모직도 증시에 입성했다. 이듬해 9월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법인이 출범했고 11월에는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화학 및 방산계열사를 한화그룹으로 넘기는 빅딜을 단행했다.
문제로 지적돼 왔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그 결과 삼성그룹 계열사는 2013년말 73개에서 현재 60개 수준으로 줄었다.
삼성은 ‘옥중 경영’으로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지만 이 역시 한계가 분명하다. 직접 보지 않고 보고만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만큼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