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둥이' 이해인 수녀…"지구상 유일 분단국가, 해결해야 할 과제"
"광복 70년 원동력, 희망의 끈 놓지 않은 국민 의지·전쟁의 폐허 극복한 인내와 용기"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억지 부리지 않아도 하늘에 절로 피는 노을의 빛. 나를 내어주려고 내가 타오르는 빛/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언제나 부담없는 청청한 소나무 빛. 나를 키우려고 내가 싱그러워지는 빛/ '용서하세요'라는 말은 부끄러워 스러지는 겸허한 반딧불 빛. 나를 비우려고 내가 작아지는 빛. -이해인 수녀 '말의 빛' 中
일흔 줄에 접어든 나이에도 언제나 따뜻하고 빛이 되는 말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가 있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민들레의 영토',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등 다수의 시집으로 팍팍한 우리네 마음을 위로하는 이해인 수녀다.
해방둥이인 이해인 수녀는 역경의 세월을 지나 광복 70년을 맞게 된 것에 대해 "새삼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1945년 6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이해인 수녀는 지난 70여년의 세월 중 가장 사무치는 일로 6.25 한국전쟁을 꼽았다. 그는 "6살때 맞은 6.25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내 안의 어둠으로 남아 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도원에 입회해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내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랑을 받은 일도 언급했다. 그는 "나의 시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들은 잊지 못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해인 수녀의 '말의 빛'과 '꽃마음 별마음'은 실제로 교과서에 실려 많은 청년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지난 2013년 작고한 고(故) 최인호 작가와 '해방둥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통하는 등 가까웠던 이해인 수녀는 "글을 쓰는 동지이자 동갑내기로서 친밀감이 있었다"며 "특히 비슷한 무렵 암으로 투병하면서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격려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인호 작가는 내가 암으로 입원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렵다며 병원에 면회는 오지 않고 꽃만 보내는 등의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며 "한때 같은 병원에 다녔기에 병원 내 성당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다"고 그를 회상했다.
지난 2008년 여름부터 암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는 건강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만그만하다"고 덤덤하게 답했다. 그는 "투병으로 인해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지만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람에 대한 그리움, 기도에 대한 갈망을 얻었다"며 "육체의 고통을 통해 영혼이 정화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우리 안에 순한 마음이 있다'라고 한 바 있는 이해인 수녀는 최근의 각박한 세상을 보며 "인간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싶을만큼 깜짝 놀랄만한 악행이 저질러 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들 역시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순한 순정이 자리해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고, 이에 눈물이 나곤 한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의 수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이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그는 "예수님이 왜 교만한 의인보다 겸손한 죄인을 어여쁘게 여겼는지를 알 것 같았다"며 "우리 모두 삶의 여정에서 깊은 곳에 숨겨진 순한 마음을 채석장에서 보석 찾는 노력으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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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 (자료사진) © News1 안은나 기자 |
이해인 수녀는 역경을 극복하며 광복 70년을 맞을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희망을 끈을 놓지 않는 국민들의 의지와 전쟁의 폐허와 가난을 극복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인내와 용기"를 꼽았다.
그러나 그는 "빠른 속도로 경제적인 성장을 이뤄냈지만 대신 잃어버린 것들도 많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해인 수녀는 "물질 만능주의와 가족이기주의, 생명경시 사상, 외모지상주의 등의 가치관들이 어느새 당연한 것들로 여겨지게 된 현실이 슬프다"며 "다함께 의식을 가족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해인 수녀는 광복 70주년을 보내는 우리네 과제로 '북한과 공존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며 "이것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장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북한과) 서로를 존중하며 이산가족 상봉 등의 호의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최근 갈수록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불신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전했다.
이해인 수녀는 광복 70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내가 어렸을 적 윤동주 혹은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었다"며 "특히 신석정 시인의 시 중 '들길'에서 '뼈가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라는 구절을 읽으며 힘을 얻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자리 부재로 의기소침해 있는 청년들이 안됐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며 "논어나 사서삼경, 그리고 채근담 같은 경전을 읽고 자신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나는 인류사에서 별이 된 위인들의 전기를 읽는 것으로 큰 힘을 얻었다"며 "시련이나 고통의 경험을 잘 활용하면 언젠가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삶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해인 수녀는 광복 70년을 맞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우리는 북한과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라며 "공동선을 향해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미래를 꿈꿔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간의 화해를 위해 매주 금요일 아침 단식 등을 하고 있다는 그는 "무관심과 냉대로 서로를 대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크고 넓은 마음으로 손 내미는 사랑의 발걸음을 시작했으면 한다"며 "힘든 전쟁을 딛고 일궈낸 자유와 평화가 헛되지 않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의 선과 사랑을 실천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는 개개인이 마음 속에서 항상 기억해야 할 것으로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에 대한 외경과 감사,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선한 마음과 배려"라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