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4개월 앞두고 이사회서 사임서 제출
회장 인선 과정에서 정부 개입 사실 '인정'
임기를 4개월 남기고 돌연 사임 의사를 밝힌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이 "사임하라는 정부 메시지가 있었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민간경제단체인 무역협회는 민법의 규정과 정관에 따라 회장 선임, 퇴임을 결정하도록 돼 있지만 정부가 인선에 영향력을 해왔다.
무역협회는 24일 서울 무역센터에서 출입기자 간담회를 열고 김인호 회장의 사임배경과 차기 회장 선출 등에 대한 내용을 밝혔다. 이날 김 회장은 앞서 열린 이사회에서 사임서를 제출했다.
김 회장은 이날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사임 권고 메시지 전달을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사임 권고 메시지가 정부로부터 전달된 경로를 묻는 질문에 "지금까지 정부 최고책임자가 모르게 무협 협회장을 정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사임 권고 메시지 전달을) 정부 최고 책임자 모르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 동안 무역협회장 인선 과정에서의 정부 개입이 협회와 정부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초대 회장부터 이전 한덕수 회장까지 어느 시대에나 선임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인사를 정부가 추천했다"며 "협회가 정부의 의견을 받아들인 까닭 역시 서로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본인 역시 박근혜 정부의 인선을 통해 회장직에 앉았지만 정작 정권을 위해 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특히 무역협회 회장 취임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남다른 인연 때문이 아니었냐는 지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 회장은 "당시 최경환 부총리는 무역협회 회장 인선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며 "(회장 임기 중)경제단체 통해서 새로운 정책 방향을 제시했을 뿐 친박 근처에는 가본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향후 협회 회장 선출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는 회장단과 이사회가 함께 논의해야할 숙제라고 표현했다. 김 회장은 "협회가 (회장 인선 과정)을 기존의 관행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다만 선거만 끝나면 회장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것 보다는 그 같은 방향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42년 경남 밀양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이후 1966년 행시 4회 출신이다. 1967년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경제기획원에서 물가정책국장, 경제기획국장, 차관보, 대외경제조정실장 등을 거친 이후 한국소비자보호원장, 철도청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첫해인 1996년 공정위 위원장을 맡았지만 김영삼 정부의 금융개혁법안 조율을 위해 이듬해 2월 대통령 경제수석으로 자리하게 된다.
경제수석 당시 김 회장은 최경환 전 부총리와 함께 경제수석 비서관과 보좌관으로 연을 맺게 된다. 하지만 같은해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와 함께 김영삼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실상을 축소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당시 두 사람은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2004년 대법원 무죄판결을 받는다.
1997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전달하기 위해 민간연구분야에서 여러 직책을 맡아 수행했다. 무역협회장을 맡기 직전에는 박근혜 정부 제2기 중장기전략위원회에서 민간위원장을 맡아 정부측 당연직 위원장이었던 최경환 전 부총리와 호흡을 맞췄다.
이 때문에 무역협회장 취임 당시 73세의 고령에도 회장직에 추대될 수 있었던 이유로 김영삼 정부 시절 함께 일한 최경환 총리와의 친분 덕분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