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업소에 월세 매물을 알리는 게시글이 붙어있다. © News1>
래미안퍼스티지 84㎡ 보증금 1억5천만원·월세 360만원
저금리 기조에 집주인들 보증금 낮추고 월세 높여
"지난 달에 찾아왔던 고객 중 한 명은 오르는 전세금이나 월세 수준을 맞출 수가 없어 경기도로 이사 나갔어요. 아들은 학교다녀야 하니까 근처에 원룸 얻어줬다고 하더라고요"(강남구 대치동 D공인중개업소 대표)
"전세난이라고 계속 뉴스에 나오잖아요. 전세 물건을 구경하기도 어려운 수준입니다. 월세로 바뀐다, 바뀐다 말은 많이 나왔지만 생각보다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서초구 반포동 P공인중개업소 대표)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서울 주택시장의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25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이날까지 서울의 아파트 월세거래량은 4541건이다. 강남구가 499건으로 가장 높았고 송파구(418건)·노원구(385건)·서초구(357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달 들어 서울시에서 체결되는 전·월세 계약 중 3건은 월세다.
고가 월세는 더 이상 중대형 아파트의 전유물이 아니다. 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경우 중소형 주택형에서도 전세보증금을 조금 낮추는 대신 고가월세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는 게 현지 공인중개업소 대표들의 전언이다.
서초구 반포동 S공인중개업소 대표는 "반포자이 84㎡는 지난달 있었던 월세 거래 9건 중 4건이 월세 200만원 이상의 거래"라며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높여받는 게 대세"라고 말했다.
J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수요가 많은 반포자이 59㎡ 주택형은 2억에 200만~230만원 수준으로 계약이 체결된다"며 "그 가격에라도 입주하겠다는 수요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래미안퍼스티지 84㎡ 주택형은 지난달 중순 보증금 1억5000만원·월세 36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F공인중개업소 대표는 "학군 수요가 몰리는 1~2월에는 집을 구하려는 경쟁이 치열해 월세 가격이 약간 높게 형성됐다"며 "수요자나 집주인 사이에 중대형 아파트만 고가 월세가 있다는 편견이 깨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학군 수요가 높은 강남구 대치동·도곡동에서도 월세 기조가 더욱 뚜렷해지는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은마아파트는 94㎡ 주택형은 지난 1월 보증금 5000만~5500만원에 월세 120만~145만원 선에 거래가 이뤄졌다.
D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은마아파트의 경우 아직까지는 보증부 월세 물건이 많은데 최근 들어 순수 월세 거래도 조금씩 나타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도곡렉슬 84㎡ 주택형은 이달 들어 보증금 2억~3억원·월세 140만~250만원에 거래가 이뤄졌다. 순수 월세의 경우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25만원 수준이다.
S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아이 교육 때문에 이사 가기를 꺼리는 이들은 전셋집을 찾다가 지쳐 '조금만 더 고생하자'는 심정으로 월세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전세난에 월세난민으로 전락하거나 집을 줄이고 방을 따로 얻는 주말부부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L공인중개업소 대표는 "85㎡에 살던 세입자들이 59㎡의 집을 월세로 계약하고 아빠는 회사 근처에 원룸을 얻어 생활하는 식"이라며 "월세를 비싸게 내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 이 같은 방법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고 밝혔다.
주거단지가 몰려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잠실 리센츠 84㎡ 주택형은 최근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230만원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잠실 엘스 111㎡ 주택형은 보증금 1억에 월세 170만원·보증금 3억에 월세 95만원 등의 매물이 나와있다.
H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급매매가 아니라 '급월세' 딱지를 단 물건들이 나온다"며 "훌쩍 뛴 전세금 때문에 기존 세입자가 재계약을 포기하자 집주인들이 급히 월세로 돌려 내놓은 집들"이라고 전했다.
잠실 엘스 84㎡ 주택형은 보증금 3000만~5000만원에 월세 170만~200만 수준이다. T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기준금리가 낮아진 이후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이려는 경향이 더욱 높아졌다"며 "대단지 아파트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이다보니 전세 물건도 간혹 나오지만 주류는 월세 물건"이라고 말했다.
관악구에서도 시장 변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봉천동 관악푸르지오 아파트 59㎡ 주택형은 지난달 3건의 전세거래가 이뤄진 반면 월세(반전세 포함)는 12건의 계약이 체결됐다. 이달 들어서는 전세가 5건이고 월세는 3건이다.
K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전세 물건은 품귀현상을 빚은 지 오래됐고 월세만 남아있다"며 "기존에 전세로 들어와 살던 세입자가 전셋값을 올릴 여력이 없어 그대로 두고 20만~30만원 수준의 월세를 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이달 초 금리를 낮춰 사상 처음으로 1% 금리 시대로 진입하면서 이 같은 월세 전환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관측이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전세 거래 비중이 높았던 주택시장이 확연히 매매와 월세로 이원화되고 있다"며 "월세로 전환되는 속도가 점차 빨라져 전세 시장의 거래 규모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양 실장은 "세입자의 경우 예전에는 다달이 빠져나가는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만 이제는 주거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어 고액의 월세를 지불하더라도 주거만족도가 높은 곳에 거주하려는 경향이 커졌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도 시세차익을 기대하기가 힘든 만큼 전세보다는 매달 고정수입이 있는 월세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