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회항' 사건으로 구속됐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나오고 있다. 2015.5.22/뉴스1 © News1 양새롬 기자>
'항로변경죄' 무죄…"계류장 내 이동은 항로 이동으로 볼 수 없다"
"구금돼 있는 동안 진지한 반성·성찰…사죄의 기회 줄 필요 있다"
여 상무도 '일부 무죄' 집행유예 선고…국토부 조사관은 '전부 무죄'
'땅콩회항'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현아(41)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구속된지 144일째 되는 날에 석방됐다.
또 논란이 일었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김상환)는 항공보안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조 전부사장에 대해 22일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여모(58)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상무에 대해서도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김모(55) 국토교통부 조사관에 대해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우선 재판부는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에 대해 유죄로 인정한 1심과는 달리 무죄 판단을 내렸다.
항공법 관련 규정에서 사용하고 있는 '항로'라는 단어는 '항공로'와 같기 때문에 지상, 즉 회항이 이뤄진 장소인 '계류장' 내에서의 이동을 포함하는 의미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판부는 "원칙론적 입장에서 볼 때 처벌대상의 확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항로변경죄가 규정한 '항로'의 사전적인 의미는 '항공기가 통행하는 공로'인데 입법자가 의미를 변경하거나 확장했다고 볼 근거가 없는 한 문언의 가능한 의미 내에서 의미를 확정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의 행위가 운항 중 항공기 내에서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항로가 변경됐는지 여부는 따로 판단할 문제"라며 "항공보안법은 폭력으로 항공기의 안전운항을 저해하는 경우 등 범죄의 종류를 세분화한 뒤 각각 처벌규정을 따로 만들어뒀기에 (조 전부사장의 행위를 항로변경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해서) 처벌의 공백을 우려할 상황도 없다"고 지적했다.
즉 항로변경죄는 항공기 납치 등 강력한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마련된 규정이라는 것이다.
또 "계류장은 특정한 이동경로가 없이 토인카의 유인에 의해 비행기가 이동하는 곳이며 기장의 판단에 따라 자유로운 회항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며 "계류장의 이런 특수성은 계류장을 항로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의미있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죄 등은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한항공 내에서 조 전부사장의 지위, 권한 등으로 볼 때 박창진 사무장 등 피해자들로서는 조 전부사장의 행동과 발언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했다"며 "피해자들이 가진 감정은 일반적인 경우보다 컸을 것이고 조 전부사장 폭행의 정도는 피해자의 의사결정을 (조 전부사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을 수준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조 전부사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라고 주장하지 않은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에 대해서도 역시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됐던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국토부가 조사를 통해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것은 국토부 감독관의 불충분한 조사 때문일 뿐 조 전부사장 등의 허위 진술로 인한 것이 아니다"라며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같은 전제 하에 "그동안 배운 교훈에 터잡아 이를 실천하며 살아갈 기회마저 외면할 정도의 범죄가 아니라면 양형에 유리한 사정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조 전부사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즉 "동료직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배려심의 부재, 비행하는 동안 운명을 같이할 승객에 대한 공동의식 부재에서 비롯된 범죄이며 피해자들의 자존감·인격에 가늠할 수 없는 상처를 준 데다가 피해자들은 아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구금돼 함께 생활하던 사람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는 조 전부사장 고백의 진지성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건 이후,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후까지도 조 전부사장은 승무원들의 잘못을 탓했을 뿐 범죄성을 심각하게 깨닫기 못했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역지사지하지 못했다"면서 "5개월 구금돼 있는 동안 자신의 행위가 왜 범죄로 평가되는지 등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조 전부사장이 피해자들에게 진정한 사죄의사를 갖고 이를 피해자들에게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로 보인다"며 "조 전부사장은 피해자들이 원하는 사과의 방식과 절차에 따르겠다고 하고 있고 이에 기초한 손해배상이 이뤄진다면 피해가 치유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 전부사장에게 마카다미아를 서비스했다가 피해를 당한 여승무원 김도희씨는 지난 주말 조 전부사장의 엄벌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김씨는 탄원서에서 "조 전부사장을 모신 14시간의 비행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갇혔던 기억"이라며 "조 전부사장 일가가 두려워 회사에 돌아갈 생각을 못하고 있고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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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2일 오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석방되며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15.5.22/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
이날 선고 직후 조 전부사장 측 변호인은 "이 사건으로 상처를 받은 모든 분들께 조 전부사장을 대신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유무죄 판단이 갈린 부분에 대해 지금의 단계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재판부에서 (항로변경죄에 대해) 현명하게 판단했다고 생각한다"며 "(상고 여부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고 판결문이 나오면 잘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 전부사장은 선고 직후 구치소로 돌아가지 않고 가족이 준비해온 사복을 입고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심경을 한 말씀 해 달라', '피해자에게 할 말이 없나', '상고 예정이 있나' 등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여 상무에 대해서도 박 사무장에 대한 강요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일부 증거인멸·은닉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 상무는 경고장 등 인사상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박 사무장은 인사상 불이익에 대한 압박상태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여 상무로서는 32년간 몸담았던 회사, 조 전부사장 등에 대한 충성심과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을 만회하기 위해 문제의 행위를 했고 조 전부사장의 행위가 가진 심각한 도덕적·형사적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제는 회사의 상하관계 등 경직된 조직문화 탓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며 "여 상무가 인사발령을 앞두고 있어 결과적으로 더 많이 배려하지는 못했지만 박 사무장을 포함한 승무원들이 추가적인 징계를 받지 않도록 노력한 사정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김 조사관에 대해서는 "국토부 조사내용, 향후 조사계획 등을 누설했다는 강한 의심은 가지만 이를 누설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조 전부사장은 미국 JFK공항에서 운항 중인 여객기 기내에서 사무장과 승무원을 폭행하고 위력으로 항공기 항로를 변경해 정상운항을 방해한 혐의로 지난 1월 여모(58)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상무, 김모(55) 국토부 조사관 등과 함께 구속기소됐다.
여 상무와 김 조사관은 박 사무장에게 국토부에서의 허위진술을 강요한 혐의 등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적용한 5가지 혐의 중 항공보안법상 항로변경죄, 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죄, 강요죄, 업무방해죄 등 4가지를 유죄로 판단하면서 조 전부사장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여 상무와 김 조사관에 대해서는 징역 8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등을 선고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