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 로이터=News1>
"17시간 논의 끝에 합의"…그리스, 15일까지 의회승인받아야
치프라스, 부채 재조정 약속 받아내…이외 대부분 개혁안 수용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이 그리스 해법을 놓고 약 17시간 동안 밤을 새가며 토론을 진행한 끝에 조건부 합의에 도달했다. 세계 최장 시간 정상회담일 것이라는 외신들의 지적이 잇따랐다.
이날 정상들은 그리스가 새로운 구제금융을 지원받기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우선이라며 보다 강도높은 내용의 개혁과 이에 대한 이행 의지를 보이라고 요구했고, 그리스 정부는 대부분의 내용을 수용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긴급 자금을 지원받아 국가부도 사태를 면하고, 최대 860억유로(108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3차 구제금융을 받기위해서 사흘 내에 개혁안 중 핵심 사항을 법률로 제정해야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번 합의로 수개월 동안 증폭됐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우려는 일단 해소됐다. 하지만 그리스 사태로 통화 공동체 내 반목과 갈등은 심화됐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는 대응책이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17시간 논의 끝에 합의 도달"
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3일(현지시간)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그리스 해법 논의에서) 17시간의 논의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전일 오후 4시에 시작해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지속된 회의가 끝났음을 알리는 발표였다.
투스크 의장은 다만, 그리스를 비롯해 여러 국가 의회가 합의안을 승인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유로존 구제금융 지원 기금) 유럽안정화기구(ESM) 프로그램이 공식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투스크 의장은 또 이날 재무장관들이 그리스에 임시 자금(bridging fund)을 지원하는 방안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지난 2주 동안 자본통제가 지속됐을 정도로 유동성이 크게 부족해 자금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은 전일 회의에서 그리스는 부채 상환을 위해 ECB의 부채 만기가 돌아오는 오는 20일까지 70억유로가 필요하며, 8월 중반까지는 총 120억유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8월 중반에는 ECB의 또 다른 부채 만기가 예정돼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대비한 '플랜 B'는 현재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혀 그렉시트 우려가 일단 봉합됐음을 확인했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의 새로운 구제금융 절차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그렉시트 위협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독일 의회가 3차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하도록 동의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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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 로이터=News1 |
메르켈 총리는 아울러 독일과 그리스의 관계가 악화됐지만 신뢰는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협상 타결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훌륭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리스, 15일 밤까지 개혁안 의회 승인 받아야"
3차 구제금융 시작 조건은 만만치 않다. 세제 및 연금 개혁 등 6개 조치가 오는 15일 밤까지 법률로 제정되고, 개혁안 전체를 그리스 의회가 승인해야 협상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정상들은 결정했다.
독일이 거의 유일하게 양보한 것은 그리스가 구제금융 지급조건을 이행하지 못하면 한시적(5년)으로 유로존에서 떠나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리스가 조건을 이행하게 되면, 독일 의회는 오는 16일 소집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3차 구제금융 협상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를 승인하게 된다. 이후 유로그룹은 오는 17일이나 주말에 다시 모여 공식적으로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회담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가장 힘들게 받아들인 것은, 500억유로 상당의 그리스 국유자산을 국외에 있는 신탁회사에 맡겨 매각한 뒤 부채 상환에 써야 한다는 독일의 방안이다.
그리스는 처음에는 이 펀드를 룩셈부르크에 두고 독일 개발은행 KfW가 이를 관리하길 원했지만 나중에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리스가 민영화에 배정한 자산은 가치가 총 70억유로 정도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파악하고 있다고 EU는 전했다. 이날 회의에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민영화로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최대 170억유로라고 맞섰다.
자산 민영화에 대한 독일의 방침에는 비난이 잇따랐다. 익명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이 같은 조치는 그리스를 "독일의 속국(protectorate)"으로 만드는 것으로, 주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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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 로이터=News1 |
이날 네덜란드 라보방크도 투자자 리포트에서 독일의 방침에 대해 "귀국의 재무 주권을 포기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가 벌어질 것이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외교 소식통은 메르켈 총리가 이 조치는 독일의 "한계선"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유로존이 내놓은 대부분의 이행 사항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중기적으로 관리가능하도록 부채 재구조화를 요구했다. 이는 이번에 합의된 개혁안을 국민들과 의회가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로그룹은 임시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방안들로는 그리스 국채 보유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이 벌어들인 수익, ECB의 긴급자금, 프랑스 등 우호국의 양자지원 등이 있다. 다만, 프랑스 정부 소식통들은 양자 이원이 검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3차 구제금융에서 IMF가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독일의 반대에 부딪혔다.
일부 소식통들은 사흘 내에 그리스가 개혁안을 의회에서 승인받을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 3일 국민투표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던 각료들은 해임하고 집권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소속 의원들은 사임하도록 만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파노스 스쿠를레티스 그리스 노동장관은 이날 정상회의 협상에서 합의가 이뤄지기 직전에 관영 TV ERT와의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타협안에 대해 찬성을 선택하지 않는 의원들을 쉽게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유로존 내 갈등 해소해야
협상이 타결됐지만 그리스 위기를 놓고 심화된 유로존 내 반목을 해소하는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전일 시작한 유로그룹 회의는 자정 무렵에 합의없이 중단되기도 했다. 회의에 참여한 한 관리는 협상장이 "유치원"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단된 회의는 프랑스와 독일 장관들이 개별적으로 만나 분위기를 반전시킨 뒤에서야 속개됐다.
이날 그리스 부채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할 때에는 쇼이블레 장관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타박하는 모습도 비쳤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쇼이블레 장관은 클라우스 레글링 유럽안정화기구(ESM) 대표와 충돌을 빚기도 했다고 또 다른 소식통은 말했다.
한편 이날 유럽 금융시장은 합의안 도출 소식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장 초반 스톡스 유럽600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1.64%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 닥스지수는 1.59%, 프랑스 CAC40지수는 2.11% 상승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