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 아내와 함께 보내기 위해 남편이 가게를 처분해 마련한 중고캠핑카. 캠핑카로 전국을 돌던 중 아내가 숨지자 남편도 음독자살을 기도, 위독한 상태로 발견됐다. / (장수=뉴스1) 박아론 기자 © News1>
"깔끔한 성격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혹시라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 두 분만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신 것이 아닌가 싶어요."
캠핑카 여행을 하다 말기암으로 숨진 할머니를 따라 음독 자살을 기도했던 박모(74)할아버지의 손녀는 1일 오후 뉴스1과의 통화에서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두 분은 동네에서 금슬 좋기로 소문난 부부였어요.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시한부 판정을 받자 그 길로 가게를 정리하고 할머니와 여행길에 나서셨죠."
박모(74) 할아버지는 지모(73) 할머니와 인천 한 마을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며 오순도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지 할머니를 향한 박 할아버지의 각별한 애정은 온 동네에 소문이 나있다. 슬하에 1남1녀를 둔 내외는 출가한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웬만한 일은 스스로 처리했다.
그러던 두 내외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한 것은 두 달 전인 7월말.
박 할아버지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할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가 진찰을 받도록 했다. 병원에서는 간암이 심각하게 진행돼 3기라는 판정과 함께 앞으로 살 날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는 그 길로 평생을 함께한 가게를 정리하고 중고 캠핑카를 구입했다. 캠핑카 여행은 할머니가 병상에서 고통 속에 여생을 보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소망과 남편과 여행을 하다가 남편 옆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바람으로 이루어졌다.캠핑카에는 가게를 정리하고 남은 돈 가운데 장례비로 쓸 500만원과 내외의 영정사진까지 마련해 두었다.손녀는 "평소에 산을 좋아하는 할머니에게 전국의 유명한 산을 돌며 좋은 경치를 보여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도 전북 장수의 산을 찾아 다니시며 한 마을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1박을 하던 중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신 듯해요"라고 말했다.8월30일 자정께 할머니는 전북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 인근의 한 공원에 주차된 캠핑카 안에서 할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인천에서 시작된 박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지막 여행'이 한 달만에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박 할아버지는 수차례 할머니를 깨우려 했으나 소용이 없자 할머니 곁에서 작은 메모지에 빼곡히 유서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유서에는 자식들에게 '뒷 일을 부탁한다. 같이 가겠다'는 내용을 남겼다.
이후 박 할아버지는 준비해둔 농약을 꺼내 종이컵으로 3컵 분량을 마셨다. 그리고 할머니 곁에 몸을 뉘였다.
하지만 이날 오전 5시께 의식이 깨어난 할아버지는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 "장모가 숨을 거뒀다. 나도 따라간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는 이날 오전 6시께 사위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관들에게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할머니는 31일 오전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었다. 할아버지를 걱정한 가족의 결정이었다. 할아버지는 1일 퇴원했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외롭지 않게 온 가족이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