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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30 11:01
[이효경의 북리뷰]글쓰기로 내 안에 숨겨진 나를 만나는 길을 활짝 여시길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084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장 폴 사르트르 『말』 (민음사∙2008)

 
말과 글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성한 임무이자 특권

 
글쓰기란 현재의 나를 지배해 오고 있는 단어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찾는다.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글쓰기의 작업은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글쓰기작업을 생각할 때면 과거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졸업반 담임선생님께서는 학급문고를 만든다고소설을 쓰라는 무모한 과제를 던지셨다.
 
소설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무질서하게 부유하는 생각을 언어로 엮어내려 애쓰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빈 원고지 앞에서 느꼈던 먹먹함은 떠오르는 관념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해 마치 막다른 골목에 이른 것도 같았었다. 지금 그 글은 온데간데없지만, 그 기억은 생생하게 현재의 나와 공존한다. 실재하는 인간의 실존을 맛본 내 최초의 기억이 아닐까?
 
글 속에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자취와 형적(形跡)이 남아 있었을 것 같은 환상이 든다.
야심에 찬 그 과제 이후로 글쓰기와의 인연은 내게 찾아 오지 않았다. 글은 유희라기보다는 두려움과 괴로움 중간쯤에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글쓰기가 내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해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글쓰기가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찾게 해 준다. 아니 아예 온통 뒤바꾸어 놓았다. 순간 세상은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글쓰기의 세계는 지나가는 바람처럼 소리 없이 찾아왔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 갇힌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매일 같이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절박감을 느낀다. 그 절박감이 글쓰기로 현실화되면 나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듯 뜻 모를 흡족함이 스며든다. 무형의 존재를 형상이 있는 실체로 환원해 두고 싶은, 전에는 맛보지 못한 이상하고 희한한 욕구이다.

중독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병처럼 나의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하면 나는 기꺼이 환우(患友)의 의복을 입기를 마다치 않고 글을 써야만 한다

 
사르트트 내가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몽상처럼 이런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어느 무렵, 우연히 부딪힌 책이 사르트르의 자서전 『말』이었다. 책과의 만남은 이렇게 뜻밖이고 예측 불허이기에 늘 스릴이 넘친다. 책 표지 뒷장에 인용된 사르트르의은 동병상련을 앓은 스승을 만난 듯 반가웠다.
 
나는 글을 씀으로써 존재했고 내가 존재한 것은 오직 글짓기를 위해서였다. ‘라는 말은글을 쓰는 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기쁨을 알았다.”
 
대문호답게 사르트르가 정의하는 글쓰기의 의미이다. 물론 대가와의 비교 그 자체가 무색한 일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질문이고 작가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은 보편적 질문이라고 본다.

그의 자서전 『말』은 사르트르가글쓰기는 그에게 무엇인가? 의 주제를 놓고 그의 유년시절로부터 거슬러 그 해답을 찾아가며 쓴 책이다. 책은 1부 읽기와 2부 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읽기쓰기만큼이나 또 하나의 거대한 정신의 세계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마치 수레를 끄는 양 바퀴와 같아 이 둘 사이는 함께 굴러간다. 책을 읽기도 전에 사르트르의 영혼의 문으로 향해 달리는 수레에 탄 듯 전율을 느낀다


사르트르 아버지 부재를 책으로 대신해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지성,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사르트르는 두 돌이 되기 전에 아버지를 잃고 외조부 할아버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아버지의 부재를 책으로 대신하며 인생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할아버지의 서재에 있는 책은 사르트르가 세계를 만나는 통로가 된다.
 
보통 사람은 사물을 먼저 체험하고 거기에서 지식으로 발전한다. 그와 달리 사르트르는 지식에서 출발해서 사물로 향했다. 그에겐 사물보다도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고 고백한다.
 
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백과사전을 읽으며 사물에 대한 것을 하나씩 배워나간다. 그에게 동물원의 살아 있는 원숭이는 책에서 본 원숭이보다 되려 진짜 원숭이답지 않다. 파리 뤽상부르 공원의 사람들도 어린 사르트르에겐 진짜 사람답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그는 생명과 정열을 찾아 책 속에 파묻히기를 더 즐겨 했던 모양이다. 이러한 책 읽기는 그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문학병으로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사르트르에게 글씨기는 사명이자 동시에 존재의 근거

 
세계는 내 발 밑에 층층이 겹쳐 있었고 모든 사물이 제각기 이름을 지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환상이 없었던들 나는 결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사물에 이름을 지으며 그것을 소유해가는 사르트르를 상상한다. 말과 글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성한 임무이자 특권이다. 인간에게 온 만물을 지배하라고 했던 전능자 신의 명령을 따라 모든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며 세상을 다스리는 인간 사르트르. 글쓰기는 그에게 사명이자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근거가 된다.
 
참여 문학의 선두에 섰던 사르트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달리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한 줄이라도 쓰지 않는 날은 없도다. 이것이 내 습성이요 또 내 본업이다. 오랫동안 나는 펜을 검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우리들의 무력함을 알고 있다. 그런들 어떠하랴, 나는 책을 쓰고 또 앞으로도 쓸 것이다. 쓸 필요가 있다. 그래도 무슨 소용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교양은 아무것도, 또 그 누구도 구출하지 못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간은 그 속에 자기를 투사하고, 거기서 제 모습을 알아본다. 오직 이 비판적 거울만이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글쓰기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의 역할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 글만큼 글쓴이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진정한 한 인간이 투영된 글이라면 아무리 하찮은 글이라도 자신을 찾은 소중한 목적을 달성한다.

 
두려움에 글쓰기 어려워도 글씨기를 시도해보시라

 
글쓰기만큼 자신을 쉽게 발견하게 되고 누구나가 시도해볼 수 있는 것도 없다. 거울을 들어 얼굴을 살피듯 펜을 들어 나를 들여다본다. 아직 만나지 못한 내면의 자아 찾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어쩌면 있는 그대로 발가벗겨진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두려움에 더이상 글을 쓰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글쓰기를 시도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 안에 숨겨진 나를 만나는 길을 활짝 열고, 나와의 진정한 소통을 시작하겠다는 사르트르적 위대한 결정을 내린 당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글쓰기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뇌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도 함께 읽어 볼 것을 권한다.



**[이효경의 북리뷰] 등 시애틀 문인들의 작품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

Resized_장 폴 사르트트.jpg




으잉이잉 14-03-30 23:48
답변 삭제  
솔직히 장 폴 사르트르는 진실을 존중하지 않은 정직하지 않은 지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야 많이했겠지만, 이인간에 대해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역겨워지는건 어쩔수없던데요....

이 사람이 지은 책, "말"에선 자신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하기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한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책을 읽은 장폴사르트르의 어머니가 사르트르보고, 넌 너의 어린시절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논평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글쓰기에 대해서 뭐 할말이 많았던건 사실이겠지만,
어짜피 이사람은 전쟁중에서도 수많은 여자들한테 편지나 보냈고, 그후에도 여자들에게 편지를 계속 썻습니다.
그딴 식의 글쓰기를 하는 인간이 글쓰기에 대해서 논한다는건 좀 같잖아?보이기까지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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