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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8 13:18
[해설과 함께 하는 서북미 좋은시-김백현] 고철의 반란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319  

김백현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고철의 반란

길고 무거운 침묵이 고철을 끌고 기차를 싣고 간다
납작해진, 구부러진, 토막난 것들
기막힌 장례행렬인데도 웃음이 나온다
기차나 고철이나 같은 철이란 상식이 그닐거려서 참지를 못한다
 
어제 앞집은 고속도로에서 차가 뒤집혀 아들을 잃었다
앞바퀴 엔드를 붙잡고 있던 볼트인가
브레이크패드를 끌어안고 있던 너트인가가 빠졌더란다
볼트 너트가 없으면 사람도 붙잡아둘 수가 없는 것이다
 
볼트 너트가 붙잡고 있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를 붙잡고 살아야 하는 그들은 고달픈 것이다
떨리고 흔들릴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끌어안고
부딪히면서 놓치않으려는 세월이 그 얼마이던가
 
쇠도 늙는다
간혹 길에서 벌겋게 단풍이 슬어 나뒹구는 볼트 너트 그들을 본다
힘이 빠져 헐거워지면서 억센 노역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용광로에 들어가서 새 고역을 다시 맡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차라리 한겹한겹 늙어가면서 사그라지고 싶었을 것이다
 
단단한 것들은 괴롭다
한 천년 푹 쉬고 싶은 열망이 기어이 화물차에 실려 가야만 하는가
고철 실은 기차가 제 발로 제 뼈대를 밟으며 제철소로 간다
무거운 쇠바퀴소리 폭풍전야와 같은 무거움
고철들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어쩌면 모든 손들을 놓아버릴지도 모를
 
 
<해 설>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고철, 특히 녹이 슬은 볼트와 너트를 인간의 삶의 필수적 조건의 대상으로 조명하여 그 가치성을 시적으로 의장화한다

볼트와 너트가 자동차의 기능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부속으로써 시인은 이것을 우리 인간의 생명의 본질적 가치로 상징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볼트와 너트는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어떤 정신적 힘, 다름 아닌 사랑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사랑이야말로 그가 표현한대로 “떨리고 흔들릴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끌어안고/부딪히면서 놓지 않으려는 세월”같은 것이다

이 같이 시인은 볼트와 너트로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조건인 사랑의 가치를 공고히 하는 시적 모티프로 구축하여 시상의 울림이 깊게 퍼지게 하고 있어 주목된다.

김영호 시인(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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