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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17 14:06
[시애틀 수필-이한칠] 처음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778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처 음
 
처음 하는 일은 언제나 설렌다
바로 춤 입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고 하는데 나는 세 번 찍혀 넘어갔다. 겨우 세 번이었으니 쉽게 넘어간 듯하지만 35년도 더 걸렸다. 타고난 성정이 고지식했으니 당연했다

해군본부에 있던 나는 일 년간 진해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8시 출근, 5시 퇴근이었다. 고된 훈련을 밤낮으로 받던 때에 비하면 시간이 많았다

장교 숙소는 두 명이 쓰게 되어 있었고, 긴 시간을 함께 할 룸메이트의 취미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책을 읽고, 음악감상도 하고 테니스, 야구 등 운동을 즐겼는데, 룸메이트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바로 사라졌다가 자정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알고 보니 카바레에서 춤을 춘다고 했다.

낮엔 기가 빳빳한 해군 장교로, 밤이면 춤꾼이 되는 그가 신기했다. 열정이 대단했으니 춤바람난 듯했다. 친구로서 춤을 끊어볼 것을 권하고 있는 오지랖 넓은 내게 그는 춤 예찬론을 펼치며 춤 배우기를 권했다. 이십 대 중반, 춤에 관한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엇박자였다. 일 년 뒤, 나는 그 춤꾼과 헤어졌다

몇 년 전, 미국에 흩어져 사는 해군 동기생 여섯 명이 36년 만에 워싱턴 DC에서 만났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주한 친구들이었기에 반가움은 컸다. 지나온 긴 세월을 스스럼없이 나누었다

모두 성실했으니 살아온 여정이 비슷비슷했다. LA에서 온 친구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아갔다. 매사에 온 힘을 다해 목표에 집중하는 마음을 유지했다는 그는 누가 봐도 멋진 사나이였다

전문직을 갖고 일하는 그가 취미로 배운 춤실력이 춤선생 못지 않다는 말에 모두 놀랐다. 공동 일정이 끝난 뒤, 한밤중에DC의 무도장에 갈 계획을 이미 세워 놓았다며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물론, 다른 친구들도 춤에 관심이 없었는데, 아내들은 은근히 따라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모두 그와 동행했다. 무도회장에 처음 간 나는 분위기가 영 낯설고 지루해 심지어 밖으로 나가기도 하여 아내가 조바심을 하기도 했다.

그날 그가 보여준 완벽한 탱고 솜씨는 춤에 문외한인 나까지 감동하게 했다. 완전한 고수였다. 스텝 하나하나에 온갖 정성을 쏟고, 파트너에게 어찌나 정중하던지 영화에서나 봄직한 신사의 모습을 물씬 풍겼다

넓은 무도장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황홀한 음악의 흐름을 타며 멋진 춤을 이끌어 나아갔다. 그 순간 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아르헨티나에 가서 탱고의 진수를 배우기도 했고, 댄스 신발도 수제로 그곳에서 맞춘 것이라 했다. 그 열정은 그의 인생에서 다른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춤 배우기를 당부했다. 나는 역시 춤은 내 것이 아니라 여기며 그렇게 넘어갔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동호회에 춤추기를 즐기는 이가 있다. 탱고는 물론 왈츠 등 주로 스포츠 댄스를 춘다고 했다. 시큰둥한 나와 달리 아내는 관심을 뒀다. 곧 운동 겸 건강에 좋겠다며 나를 부추겼다. 나는 골프와 등산 등 운동을 충분히 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아내는 집요하게 채근했다. 아내를 이겨본 적이 없는 착한 나는 넌지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아내와 함께 나는 훌륭한 춤 선생 앞에 섰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도 부드럽게 그의 아내를 잘 이끌며 어찌나 왈츠를 잘 추던지 나는 자꾸 꽁무니를 빼고 싶었다. 뻣뻣하기 그지없는 몸매를 갖고 고전을 면치 못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폴짝폴짝 잘도 따라 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운 것인지, 얄미운 것인지 내 심사가 요란했다. 상대를 바꿔가며 내가 다른 여자의 손을 잡는 것도 민망했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빙빙 돌 때는 신경이 쓰여 나까지 어지러웠다

춤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다. 연습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옛날 진해에서 춤 배우기를 권했던 친구가 생각나고, 무도장까지 구경시켜 주고 춤 입문을 꼭 하라던 LA 친구가 떠오른다. 그나마 아내 덕에 지금이라도 춤 흉내는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춤은 내 것이 아니라며 도외시했던 때가 생각나면 웃음이 나온다. 벌써 춤에서 해볼 만한 재미와 멋을 맛보았다는 것일까.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갖고 온 정성을 쏟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그것이 춤이어서 참 좋다. 은퇴 후에 꼭 필요한 운동 중 하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여인의 향기에서 탱고를 추는 알파치노의 멋진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열심히 연습해 춤을 멋들어지게 추고 싶다. 그날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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