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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22 10:25
[시애틀 문학-공순해 수필가] 은밀한 도시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489  

공순해 수필가


은밀한 도시
 
 
지난해, 내게 봄은 껑충 뛰어서 왔다. 늦겨울인 2월 초에 떠나 3월 말에 돌아왔으니, 시애틀의 봄이 물구나무서기 하듯 다가들었던 탓이다.

서울 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일은 친구들을 만난 일이었다. 그간 세 차례나 다녀왔지만 시간에 쫓겨 친구들을 만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작심하고 갔다. 그들은 연락 받자마자 헤어졌던 시간을 상쇄시키기라도 할 듯 서둘러 모였다.

그리고 작심했음에도 역시 빠듯한 일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강남에서 만났던 친구 중 하나는 수유리 언니네까지 따라 붙었다. 광화문에서 만났던 친구 중 한 명 또한 수유역까지 동행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처럼 그들은 그 30여 년의 시간이 흘러간 적이 없었던 것처럼 굴었다.

부족했던 내 모습은 모두 빼버리고, 내가 고맙게 해주었던 일, 좋았던 일들만 회상하며, 그들은 그간 볼 수 없었던 걸 아쉬워했다. 심지어 30여 년, 40여 년 전에 내가 했던 말들과 행동들까지 상기시키기도 했다

정말 내가 과거 그리 친절한 사람이었나, 주위에 도움되는 존재였나, 그리 철들은 젊은이였나, 그리 멋진 말들을 했었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그들은 인증인(?)조차 칠 태세였다.

친구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의해 젊은 날의 내 모습이, 과거의 시간이 퍼즐 맞추듯 재조립, 복원되는 순간들이었다. 그래서 과거의 살아 움직이는 나를 만날 수 있었던 사실, 빛바랜 시간이 생생하게 다시 일어서는 즐거움은 경이의 경험이었다.

이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내가 고마웠던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어 그런 사실들을 시시콜콜히 기억해주는 친구들이 더 고마운 사람들이었고, 귀한 존재들이었단 깨달음이 새삼 가슴을 쳤다.

그러나 그들로 해서 촉발된 그리움을 찾아,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산소를 찾고, 과거의 공간에서 내 모습을 더듬어 보려 했을 때였다. 친구들 속에 살아 있는 나를 제외하고,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자그마치 40여 년을 생활했던 서울, 인천 근교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무찌르고 지나간 거기엔 옹색하고 남루했던 모습이 지워져, 과거의 시간 따위는 없었다. 기억의 이정표 구실을 하는 주안역,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도 달라져 있었고, 광화문의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도 주소는 같았지만, 예전 그 자리에 계시진 않았다

심지어 도봉산마저 달라져 있었다. 어딜 가도 볼 수 있는 외국인들, 복부를 드러내고 시원하게 흘러가는 청계천. 더는 난마(亂麻)가 아닌, 불편하지 않게 잘 정리된 도시는 또 하나의 이국이었다. 젊은이들 취업이 어렵다는 엄살과는 달리 자신감에 넘쳐, 삶의 동력이 왕성하게 느껴지는 사회였다.

사람들 또한 2013년의 사람들이었다. 돈을 낼 때마다 현금영수증 발급해 드려요? 하는 질문,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예약하고 결제하는 손님들, 전자카드 하나로 환승 연계 가능한 교통 체계, 미래의 어느 외국 도시에 와 있는 느낌조차 들었다. 이방인이 되어 두리번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고아처럼 남루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머릿속이 회전되며 두 개의 도시가 일어섰다. 친구들 속에 살아 있는 나의 도시, 현재 서 있는 낯선 도시. 기억에 의해서만 조립되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하는 두 개의 중첩된 도시. 그 두 개의 도시를 열 수 있는 비밀번호는 나였다

나만이 그 문의 축을 회전시켜 비밀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도시 속에서 형제들은 집이었고, 친구들은 꽃이었고, 가로수이며 바람이었다. 왜 지금 와서야 이 점을 깨닫나? 내가 바로 뒤늦게 깨닫는 에피메테우스였구나.

그 도시에 남은 마지막 거점을 찾아야 했다. 삼선교 나폴레옹제과. 그러나 현실 속에선 역시 없는 공간이었다. 그 집에선 등단 무렵의 박완서 선생의 모습도 먼발치로 볼 수 있었고, 윤기나는 까만 머리의 친구들 모습도 찾아 볼 수 있었는데. 일상적으로 들러, 럼주 맛 나는 작은 케익을 즐기며 수다로 하루를 마감하던 그 시간이 만복의 근원께서 주신 선물이었던 걸 왜 지금 와서야 알게 되나.

아쉽지만 그 도시의 성문은 그만 닫아야 했다. 복개된 성북천 위에서 나는 하릴없이 구두 뒤축으로 땅만 문질러댔다. 현실의 낯선 도시엔 역시 허망하게 부는 황사 속에서 봄이 뒤틀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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