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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06 17:51
[시애틀 문학-이한칠 수필가] 괜찮은 선물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642  

이한칠(수필가)

 
괜찮은 선물

 
허물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담배를 피워 보았다. 학교 옥상의 굴뚝 뒤에 숨어서 어쭙잖게 어른이 된 듯 신이 났었다. 그런데 자루 속 송곳은 삐져나오기 마련이라더니 교련 선생한테 딱 걸렸다.

용서를 빌었지만, 곧바로 담임 선생님의 호출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착실한 학생으로 신임받고 있던 나는 난감하기만 했다. 종아리를 회초리로 때리시며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던 선생님의 말씀이 한동안 나를 아프게 했다. 만일 교련 선생이 용서를 받아들여 넌지시 타일러 조언을 주었다면 담배 피우기는 그때 끝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시작한 담배를 대학에 가서도 계속 피웠다. 70년대 초, 용돈이 넉넉지 못한 때였으니 담배 조달이 문제였다

담배 포가 쌓여 있던 아버지의 캐비닛은 많은 서류 때문인지 항상 잠겨 있었다. 아버지께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열려 있는 캐비닛의 담배 포에 눈이 갔다. 한 갑을 몰래 빼내었다

얼마나 죄스럽던지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지만, 그때의 담배 맛은 잊을 수 없다. 딱 한 갑만이라고 했던 담배 빼내기는 오랜 기간 계속되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언제부터인가 외출하실 때도 캐비닛 문을 일부러 열어 두신 것을 알게 되었다

막내아들을 나무라는 대신 이해하려 하셨던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이 생기자 나는 제일 먼저 담배 포를 사서 캐비닛에 넣어 놓았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아버지께 말씀드리자, “끊을 수 있을 때 언제고 끊도록 해라라고 짧게 말씀하셨다. 크게 책망하시지도 않았는데 나는 처음으로 금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에 발을 내딛고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 나는 출근할 때마다 두 갑씩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맛을 들였다. 아이들을 위해 아내는 집 안에서는 금연해 주길 바랐다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는 맛에 익숙해질 무렵엔 아예 끊으라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불가능한 일로 여겨져 콧방귀를 뀌는 내게 아내는 오만 가지의 백해무익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때 끊을 수 있을 때 끊으라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생각나서 다시 금연을 시도했다. 쉽지 않았다

끊고 피고 다시 끊었을 때 아내가 집에 없는 틈을 타 베란다에 나가 느긋하게 담배를 즐겼다
그때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내 모습을 보더니 말없이 베란다 문을 잠가 버렸다.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졸지에 한 평 남짓 베란다 감옥을 두 시간 정도 경험한 셈이다. 민망하고 스스로 창피한 마음에 억울하기까지 했다. 밖에서 놀던 아이가 돌아오자, 아내는 시치미를 뚝 떼고 베란다 문을 열어 주었다. 그 뒤 다시 끊고 여섯 달 정도를 담배 없이 잘 버텼다. 이번에는 정말 끊은 것으로 믿었다.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다. 술상을 깔끔히 차려 거실에 마련해주고, 아내는 늦은 시간이 되자 방으로 들어갔다. 친구와 나는 포도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골초인 친구가 뿜어내는 연기는 나를 유혹했다. 절친한 친구와는 행동을 같이해야 도리일 것 같다는 핑계가 생겼다. , 끊은 줄 알았던 담배 맛이 싫기는커녕 어찌 그리 구수하던지, 연거푸 두 개비를 피워댔다

그때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이럴 수가… 나는 갑자기 무람한 모습이 되었다. 아내는 내가 담배를 물고 뻐금거리는 모습을 보고도 못 본체했다. 이튿날도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만일 내게 핀잔이라도 한다면, 이 참에 나도 억지를 쓰며 다시 피워볼 요량이었는데 아내는 끝까지 침묵했다. 마음먹은 일은 꼭 해내는 사람이라고 평소에 나를 추켜 세워주던 아내에게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깊은 궁리 끝에 큰 각오를 하여 아내의 생일에 금연이라고 쓴 카드를 선물해 주었다. 그 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신기한 것은 아내가 담배를 끊으라고 종용할 때는 시큰둥했는데, 모르는 체 눈감아 주니 스스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어른인 나도 그럴진대 하물며 자라는 아이들은 어떠하랴.  

대학교 총장을 지낸 어떤 분은 힘든 농사를 지어 중학교로 유학을 보내 준 부모님에게 꼴찌인 성적을 내보일 수 없어 일등으로 고쳤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한 마리밖에 없던 돼지를 팔아 일등 축하 잔치를 크게 벌여 주었다

그 죄스러움에 대한 속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교수가 되었다. 아버지께 그 때의 일을 고백하자 알고 있었다라고 하셨다. 만약 성적을 고쳤다고 나무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결국, 자식의 허물을 감싸준 일이 크게 효과를 본 셈이다. 그런 지혜는 인내와 넉넉한 너그러움에서 나오지 싶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의 실수와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실수를 즉시 꼬집어 나무라지 않고 뚱겨주어 스스로 느끼게 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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