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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4 02:08
[시애틀 수필-이한칠] 나는 조율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606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나는 조율사

온통 초록이다. 넌지시 떠난 오월의 자리에 서둘러 유월이 들어섰다. 유월의 신록은 활력을 준다.

보랏빛 라벤더와 수국, 그리고 빨간 목단꽃이 핀 우리 집 작은 정원이 화려하다. 꽃잔치는 벌어졌는데, 제멋대로 들쑥날쑥 더부룩하게 자란 잔디가 얼핏 눈에 걸렸다. 그들은 내게 제때에 마음을 써주지 않는다며 눈을 흘기는 것 같았다. 시선을 슬며시 집안으로 돌렸다.

이번에는 조율해 달라며 언제부턴가 조르고 있는 피아노가 나를 반겼다. 거실의 피아노가 주인을 잃어 제소리를 못 낸지 오래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작은애가 동부로 떠났으니 그럴 만하다. 가끔 건반을 두드리던 아내는 내게 조율을 하자고 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었다. 어쨌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잘 버티고 있는 그 그랜드 피아노를 못 본체했다.

그러던 중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오래 전에 계획했던 작은 음악회를 우리 집에서 열기로 했다. 프로그램은 몇 곡의 가곡과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피아노 연주였다. 음악회의 날짜는 다가오는데, 연주뿐 아니라 다른 악기 반주까지 해야 하는 제일 중요한 피아노 조율을 미루고 있었으니 당황스러웠다

며칠 남겨 놓고 서둘러 조율사를 섭외했는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음악회 직전에 경험이 풍부하다는 한 조율사와 예약했다. 진작 조율했더라면 그동안 아내도 간간이 연주를 즐겼을 것이고, 그렇게 바삐 허둥대진 않았을 텐데 나의 게으름을 탓했다

미국인 피아노 조율사는 시각장애자였다. 천상의 음색을 구별하려면 청각이 우선이지만, 필요하면 피아노도 움직여야 하고, 건반의 터치 감각도 요구되는 일인지라 나는 조금 우려했었다.

그러나 건장한 청년 도우미와 함께 온 그는 나의 염려를 금세 없애 주었다. 음계 하나하나에 표준음을 맞추며 88개의 건반과 여러 개의 현을 바르게 조절하며, 정확한 음을 만들어 내려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신중하지만 날파람스럽게 장시간 동안 진행하는 숙달된 모습에서, 어떤 일을 아주 익숙하게 처리할 때, ‘눈감고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와 닿았다.

, ‘조율’! 바로 이것이었구나. 조율이란 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른다는 말이다. 또 다른 뜻은 문제의 어떤 대상과 알맞게 조절함으로써 일이 잘되게 한다는 뜻이니 내게 딱 필요한 화두이지 싶었다

나 자신의 마땅찮은 게으름에 뭔가 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나에게는 미루는 것이 참 쉽다. 이제 미루고 싶은 대상과 조절해 볼 생각을 하니 무언가 기대된다.

내 친구는 건강한 편이다. 나보다 키는 작지만, 체구는 다부지다. 등산은 물론 골프, 스키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즐긴다. 혈압약 등 이것저것 약을 복용하는 나와 달리 종합 비타민 하나로 충분하다더니, 얼마 전에 탈이 났다. 심장 혈관에 이상이 발견되어 갑작스레 수술하게 되었다

항상 건강했던 친구도 놀라는 듯했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아 회복 단계에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몸도 수시로 조율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얼마나 복잡한 우리의 몸이던가.

복잡한 것이 어디 우리의 몸뿐이랴. 조석으로, 아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우리의 심사는 얼마나 다양한 조율이 필요할는지.

사는 것이 만만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만만치 않은 경우 대부분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니, 오해와 갈등은 쉽게 있을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려면 우선 내가 누구인지 알고, 상대방을 이해하여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하지 싶다. 그 다름을 당사자 모두에게 통합되는 쪽으로 조율해 나아간다면 훨씬 의미 있는 삶이 되리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아 나와의 조율을 시도했다. 게으른 습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루고 있던 것들을 나열하여 그들과 알맞게 조절해 보았다. 우선 제때가 한참 지나 터부룩한 잔디를 깎아주니 나의 긴 머리를 깎은 듯 상쾌했다

또 가스탐지기가 삐삐~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낼 때마다 헌 전지를 빼내고는 새 전지 교환을 미루고 버텼다. 뚜껑 열린 가스탐지기를 볼 때마다 불편했는데, 이 참에 모두 새 전지로 갈고 나니 체증이 내려간 듯 개운했다. 그리고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등한시하여 서운해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풀어 주어야겠다.

신록의 유월. 이 좋은 계절에 나는 눈 감고도 내 인생을 잘 아우르는 조율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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