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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21 15:12
[시애틀 수필-공순해] 환상을 즐기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074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장)

 
환상을 즐기다

 
그 애는 늘 주택 설계도를 그렸다. 먼저 네모를 그려, 안방 건넌방을 넣고, 그 가운데 분합 달린 마루를 두고, 안방에 부엌을 내달았다. 뒷간은 어디에 둘까, 목욕탕도 있어야 하고, 우물도 중요해. 우물엔 지붕을 얹고, 기둥엔 새집도 달아야지. 집은 남향판으로 앉혀, 해가 많이 들게 하자. 마당에 심은 해바라기가 키를 키워 실컷 해바라기를 하도록.

1 가정(家政)시간에 주거 환경을 배우면서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자신이 사는 집과 전혀 다른 일반 주택들이 그 애는 부러웠다

전후(戰後) 공간의 시장을 낀, 연못가에 지은 그 애 집은 필요로 방을 내달다 보니, 애당초 설계와는 거리가 먼, 방이 아홉이나 되는 집이었다. 그랬기에 미로처럼 복잡해, 집으로서의 아늑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 애가 늘 웅크린 자세로 산 건 어쩌면 그 집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웃은 그 애네를 부러워했다. 공동 펌프를 쓰는 시장에서 뒷마당에 펌프가 따로 있었고,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동네에서 뒷간이 그것도 둘이나 됐으니까. 그렇게 구조가 이상한 그 집은 집 지은 재료도 이상했다. 지붕이 기와도 초가도 아닌 타마구 지붕이었다

콜타르를 칠한 지붕을 볼 때마다 그 애는 세상과 동떨어진, 다른 곳에 사는 기분이었다. 이사 오기 전 살던, 사과나무 배나무와 우물이 있던 기와집. 그 애는 그 집이 그리워, 그 비슷한 집을 늘 도면에 그려 넣으며, 상상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그 애가 부러워하던 집은 돈암동에서 미아리 고개로 넘어가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붉은 벽돌 이층 양옥집이었다

왕십리에서 시작되는 하굣길, 만원 버스에 지친 나머지 무릎이 저릴 만큼 힘들 때면 보이던 그 집은 담쟁이에 담쑥 싸 안겨 위로의 눈짓을 보내곤 했다.  

저 집엔 누가 살까? 어떤 사람들이 살까? 어떤 구조의 집일까? 소설가 김내성 집이 이 근처라던데, 혹시 저 집 아닐까? 그 애의 첫 책 읽기가 그의 <사상의 장미>였던 만큼 그 앤 김내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번 찾아가 보는 공상도 했다.

그러나 용기를 내진 못했다. 그런 쑥 같은 짓을 어찌. 그러며 고교에 진학했다. 설계도 그리는 버릇은 여전했다. 공책 뒷장, 여백 있는 아무 종이에나 그렸다. 가끔 한숨도 쉬었다.  

그러며 그 애는 소설도 썼다. 글쓰기는 위로가 됐다. 형제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몰랐다. 배려에 대해서도 몰랐다. 그런 이상한 관계로 시간이 지나 그 집을 떠나게 됐다.

아버지 병환으로 기운 가세에 셋집으로 가게 됐다. 그 몇 군데 셋집을 전전한 뒤 다시 시장으로 돌아왔다. 병환이 회복된 아버지는 거기에 새집을 지으셨다. 여전히 설계도 없이. 그러나 그 애는 설계도 없는 집을 짓는 아버지를 아쉽지만 관대하게 봐드릴 만큼 성장했다. 대신 그 앤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열심히 소설을 썼다. 소설 쓰기는 설계도 그리기 대신이었다.

그러나 주택 설계도 그리기에서 끝났던 것처럼 그 애의 소설 쓰기도 그렇게 끝났다. 인생의 단계는 그렇게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딱 한 번 정상적인 주택에 거처를 정할 뻔한 일은 있었다.

결혼 전, 남편은 결혼을 위해 집을 지어 두었다 했다. 집 기초를 닦을 때 쇠를 갈아 묻고, 실내에 붙인 타일 윤을 내기 위해 돼지기름으로 닦아, 단단하게 지은 집이라고 했다.

75평의 아이 놀이터도 있었다. 하지만 그 집은 병환 중이던 시어머니가 반대하셔 이사할 수 없었다. 정상적인 주택은 여전히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남의 집이었다.

태평양을 건너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제, 겨우 집을 마련했지만 어린 시절 꿈에 부풀어 그려 넣던 설계도의 집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가을이다. 릴케가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을 짓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소설 쓰기를 그만둔 그는 그랬기에 요즘 머릿속에서 다시 설계도를 그린다. 이유는 햇살 바른 창턱에 기대앉아 책 읽기를 하고 싶어서다. 달팽이에게도 집을 주시니, 평생 환상으로 집을 그려온 자신에게도 주지 않으실까 하는 기대가 왜 없었겠나.

한데 요즘 그는 깨달았다. 어느 날 뜨거운 땅을 기어가는 지렁이를 보고서였다. 온몸에 흙을 묻힌 채 기어가는 지렁이의 고통이 너무도 처절했다. 그 순간 그는 알았다

집을 아예 받지 못한 존재도 있는데, 그간 그나마 가졌던 집이 오히려 감사한 것 아닌가. 환상을 즐긴 것도 은혜였다. 환상은 이루어질 수도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 도리어 그 분은 우주를 집으로 주셨다. 평생 웅크렸던 그의 자세가 비로소 풀리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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