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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23 13:43
[시애틀 수필-김윤선] 맥도널드 공부방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886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지 지부 고문)

 
맥도널드 공부방

 
그날, 내가 맥도널드 상호에 홀렸던 건 우연이었을까. 구식예식을 마친 신랑각시가 처음으로 팔짱을 낀 채 어색하고 뻣뻣한 자세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듯한 그림, 그런 상호의 맥도널드에 나는 지금 일주일째 발을 들여 놓고 있다.

그때 가방엔 미처 정리하지 못한 원고를 담은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당연히 도서관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볼일을 마치고 나오는 딸아이를 다른 지역에 시간 맞춰 데려다 줘야 해서 그리 한가하지만은 않았다. 더더구나 낯선 지역에서의 교통사정은 내게 오리무중이었다.

녀석과 눈길이 딱 마주친 건 우중충한 날씨도 한몫 했을 게다. 어디든 온기 있는 곳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니면 이미 나도 모르게 인지돼버린 광고판 때문이었을까. 눈웃음을 살살 치며 내 옷소매를 잡아 끌어당기는 폼이 한편으론 살가웠다.

“너, 조앤 K 롤링 알지. 대박인 해리포터 작품 나온 곳이 스타벅스 커피점이라잖아. 너도 혹 아니? 오늘 여기서 대박 작품이 나올지.

성공한 기업답게 고객의 비위를 맞추기에는 이골이 났다는 듯, 내가 가장 듣기 좋아함직한 쑥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리고 그게 내 아킬레스건이라는 것도 녀석은 오래 전에 알았던 표정이다.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드문드문 적당한 빈자리가 마음에 여유를 준다. 한 바퀴를 죽 훑어보았다

체인점의 내부구조라는 게 거의 비슷하다. 출입문 오른쪽으로 복도 모양의 통로가 있고, 그 안쪽에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이 집은 공간이 꽤 넓어서 그쪽으로 탁자 몇 개가 자리하고 있다.

계산대와는 등을 대고 있으니 직원들의 눈에서도 벗어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젊은 청년이 노트북을 펴놓고 이미 작업 중이었다.

마침 옆 탁자가 비어 있었다. 빼앗길세라 얼른 커피 한 잔을 주문해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약간의 긴장감이 밀려든다. 순간, 내가 무슨 조앤 롤링이라고, 공연히 목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미국 특유의 무관심이라고 해야 하나, 타인 존중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노트북을 열고 말았다.

맥도널드의 커피가 숭늉 맛이라는 소문이 되레 내 발걸음을 편하게 했다. 게다가 컵의 크기에 상관없이 같은 가격이라 기분에 따라 조절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런데 그게 미끼였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더니, 컵의 크기가 클수록 뜨거움이 오래 간다는 명분으로 은연 중 커피의 양이 늘고 말았으니, 언젠가 가격이 올라도 별 수 없다.

음악 대신 텔레비전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프로그램에 눈 두기가 편하다.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늙수레한 사람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저들만의 언어로 대화하는 광경 또한 낯설지 않다

아침부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아빠가 눈을 끈다. 홀아비인가, 아니면 아내가 워킹맘인가. 은근한 비밀 하나를 보는 듯하다. 그 아이들이 고객들의 평균 연령을 떨어뜨려 내 나이도 한참 떨어졌다

흙 묻은 옷으로 트럭을 몰고 와 커피 한 잔을 들고나가는 씩씩한 표정의 건장한 청년에게서는 삶에 지친 모습보다 활기를 보는 듯해서 오히려 흐뭇하다. 떠들썩한 분위기가 마치 한국의 분식집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맥도널드는 수더분한 내 이웃의 삶의 현장이다.

곧이어, 러시아계 여인 세 명이 들어왔다. 젊은 여인 세 명의 수다가 어느 나라인들 다를까. 모처럼 얻은 시간을 허비할세라 곧바로 수다가 시작됐다. 웃음소리를 낮추고 목소리를 죽이느라 딴엔 조심성을 보였지만 실은 그리 눈치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의 언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저들뿐이니. 처음엔 그 언어들이 내 생각의 이어짐을 방해한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내 귀에서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는 저들의 유쾌함이 내게 전이되어서인지 한참 막혀있던 구절이 둑 터지듯 했다. 어느 새 여인들의 수다가 내 글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쯤에서 중국인 남자 둘이 대화를 하고 있다. 목청을 돋우는 게 심각한 이야기인가 보다. 불현듯 나는 보았다. 들리지 않는 언어들 속에 들어 있는 삶의 기운을, 그리고 그 기운이 바야흐로 내 언어로 되살아났음을 보았다. 무엇보다 수더분한 저들의 삶이 내 글에서 급속히 용해되고 있음도 함께 보았다.

딸아이에게서 어디냐고 묻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맥도널드 공부방. 5분 뒤에 만나자.
단 일불에 세낸 공부방에서 나는 주춤대고 있던 원고를 마감했다.
설핏 대박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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