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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02 23:31
[이효경의 북리뷰] 인간의 보편적 연약함과 그로 인한 참상을 여과없이 보여주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673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민음사, 2005)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일까?
꼽추와 집시여인의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모순
 
 
누가 이 소설을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와 집시 여인 라 에스라멜다의 러브스토리라 했나? 외눈박이 흉물 콰지모도의 순수한 사랑이 이 소설의 읽는 재미를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제는 아닐 것이다. 사실 이 두 주인공을 놓고 사랑을 얘기하는 것은 모순에 가깝다.

라 에스라멜다는 콰지모도의 극적인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기는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시종 바람둥이 군인 페뷔스에게 순정을 바친다. 반면 콰지모도의 사랑은 라 에스라멜다가 보여준 연민에 대한 집착이고 애착일 뿐이다.
 
그럼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여야 할까? 안타고니스트로 책의 전체 흐름을 이끄는 노트르담의 부주교 클로드 플롤로일까? 사실 콰지모도와 라 에스라멜다에 비하면 플롤로 부주교가 갈등하는 심적 변화의 전개는 소설의 큰 줄기이자 흐름이다.
 
 
건축물 노트르담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셈이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인물이라기보다는 건축물 노트르담 성당에 두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 소설의 원제목이 그것을 입증해준다. 책의 저자 빅토르 위고는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보존해야 함을 19세기 파리의 시민들에게 계몽시킨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책 서문에 그의 의도는 확연히 드러난다.
 
소설은 파리 시내와 노트르담 성당으로 온통 장식되어 있다. 망원렌즈와 클로즈업을 적절히 사용한 영상을 보듯 독자를 그 은밀한 곳 안으로까지 이동시켜 준다. 중세시대 건축에 대한 작가의 오랜 성찰과 이해는 빅토르 위고의 건축학 개론을 듣는 듯이 웅장하다.
 
이 책을 읽은 파리 시민들은 19세기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사업에 적극적으로 모금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노트르담 성당을 얼마나 중요시했을지 상상이 간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야말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 셈이다.
 
빅토르 위고는 중세시대에 지어진 인간 정신의 총체라고도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미래를 찬찬히 조망한다. 외형의 견고함과는 달리 서서히 무너져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소설은 지긋이 암시한다.
 
 
인간의 비극이 빚어내는 것은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
 
 
인간의 욕망과 질투와 사랑이 영원할 것 같은 건축물과 그 속에 있었던 신앙을 무너뜨린다. 그것은 중세시대의 화려한 건축물이 훼손되는 것보다 더 가슴 아픈 비극이자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바로 이 인간 비극이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 위고가 건축물을 예를 들어 암시했듯이 ‘이것이 저것을 죽이리라’로 집약된다. 이것이 저것을 죽이는 예는 여러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소설 속에서 일관되게 보인다.
 
 
 
인간의 끈끈한 본성을 막기에는 지성과 신앙은 역부족
 
 
먼저 클로드 플롤로 신부의 인간성 추락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최고의 지성과 신앙을 자랑했던 젊은 클로드 플롤로 신부는 부주교의 자리로 올라 노트르담 성당의 자리를 굳게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한 순간 밀어닥친 인간의 끈끈한 본성을 막기에는 지성과 신앙은 역부족이었다.
 
플롤로 신부는 이집트의 집시여인 라 에스메달다를 성당 꼭대기 먼발치에서 보게 된 순간부터 마음속으로 그녀를 탐하게 된다. 그녀에 대한 욕정과 사랑은 날이 갈수록 짙어지고 결국 부주교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어 그녀를 차지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한때 성역과도 같았던 정신의 세계는 더는 노트르담의 거룩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부주교 클로드 플롤로라는 한 인물을 통해 우리는 그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이 평범한 우리와 다를 바가 없음을 본다.

 
비열한 인간의 양면성과 절대 변하는 않는 본질의 바닥을 보다
 
 
인간의 보편적인 연약함과 그로 인한 참상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그렇게 사모했고 모든 것의 해답을 줄 수 있다고 믿어왔던 지성의 세계, 학문의 세계, 영적인 세계의 동경과 그것을 향한 추구는 라 에스메랄다라는 한 아름다운 집시 여인을 통해 한 순간에 무너져 갔다.
 
비열한 인간의 양면성과 절대 변하지 않는 본질의 그 바닥을 본 우리는 모두 그와 함께 나락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떨어져 간다. 플롤로 부주교가 자신에게 실망한 것 이상으로 책을 읽는 독자도 진정한 흉물 그에게 적잖은 허망감을 느낀다.
 
하물며 부주교를 아버지 그 이상으로 따르며 그 누구보다도 존경했던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에게는 어떠했을까. 자신이 이제껏 믿고 사랑했던 것이 고작 이것이었나 하는 허무한 실상을 부주교의 비양심적이고 인간의 더러운 욕구를 통해 처절히 맛보게 된다.


방패막과 영혼의 집도 의미가 없게 됐을 때 느낌은
 
 
자신의 양아버지와도 같았던 플롤로 부주교가 라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 때문에 살인도 불사했으며 차지하지 못할 바에는 부숴버리겠다는 처참한 악마적 모습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고, 격분한 나머지 콰지모도는 부주교를 성당 꼭대기에서 바깥으로 떨어뜨려 죽이고 만다. 그에게도 이것이 저것을 죽이는 비극이 찾아온 것이다.
 
온갖 세상의 모욕과 차별 속에서 이제껏 자신을 보호해 주고 방패막이 되어 주었다고 믿었던 부주교 신부는 추락했고,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집이라고 믿었던 성당 노트르담도 이제 콰지모도에게 아무 의미가 되지 못한다. 노트르담은 그에게 구원의 장소일 수 없었다. 그는 주저 없이 성당을 떠난다.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콰지모도는 안타깝게도 시체더미들 속에서 사랑했던 라 에스메랄다와 나란히 잠든 모습으로 발견된다.
 
콰지모도는 자신의 영혼 구원을 성당의 절대자가 아닌 사랑하는 여인의 품으로 바꾸었다. 구원의 절대자처럼 여겼던 부주교 신부가 가져다 준 인간적인 실망과 배신감이 콰지모도의 신앙을 철저히 짓밟았다.
 
 
무죄하고 순결한 영혼이 세상의 희생양이 되기도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소설 속 인간의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엇갈린 사랑 속에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리고 교수대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집시 처녀 라 에스메랄다의 비극에 견줄만한 것은 없다. 자신을 구원해 주었다고 환상처럼 믿었던 군인 페뷔스를 향한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사랑은 자신을 모든 파리 시민들의 웃음거리로 만들고 결국에 가서는 처형이라는 선고만을 남긴다. 무죄하고 순결한 영혼이 세상의 희생양이 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이다.
 
라 에스메랄다의 맹목적인 사랑 또한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소설은 보여준다. 실체를 알지 못하고 페뷔스의 겉모습에만 마음을 뺏겨 그를 자신의 백마 탄 왕자로만 생각한 불쌍한 여인 라 에스메랄다. 연인의 사랑이 아니면 차라지 죽음을 달게 받는 것도 마다치 않겠다는 눈먼 사랑의 묘약이 불러온 담대함. 그것이 그녀를 죽였다.
 
물론 사회의 부조리한 형벌 제도와 왜곡된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맹목적 사랑은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 소설에는 인간 본연의 본성이 견고한 신성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그들의 비극적 인생을 보는 것은 파리의 노트르담의 아름다운 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듯 망연자실함에 빠지게 한다.
 
빅토르 위고는 그것을 소설 속에서 ‘인쇄술이 건축술을 죽였다’라는 것으로 빗대어 말하고 있다. 중세시대에는 화려한 건축물 속에 인간의 정신이 종교의 힘에 눌려 매몰되어 있었다. 인쇄술의 도래로 인해 중세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고 인간의 정신은 책과 활자를 통해 성당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사상과 정신을 불변하는 돌에 남기기 위해 건축이라는 것을 통해 그 시대 정신과 예술혼 그리고 인간의 지성을 모두 담아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등장하게 되면서 건축의 힘은 그 영속적인 힘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돌에서 종이로 인간의 정신세계는 옮겨간 것이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15세기 중반인 것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의 등장 시기와 맞아 떨어지고 노트르담의 성당이 고딕양식의 정수이자 중세시대 말 예술성을 대표하는 건축물이었음을 참작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위고의 인쇄술과 건축술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장이었다. 실제로 인류는 중세 이후로부터 본격적으로 인간의 사상과 지성이 책으로 널리 보급되었고, 그것이 인간 영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확인했다.
 

인간 정신은 위대한 지성이라기 보다 본성쪽에 더 가까워
 
 
이제 건축물에만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담는 시대는 지났다. 종이와 활자의 힘을 통해 인간의 사상은 파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인간의 지성이 신앙을 서서히 좀먹게 되고 성당의 견고함을 점차 무너뜨리기 시작하는 필연적 귀결에 도달하게 했다.
 
물론 소설에서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위대한 지성이라기보다는 억누르기 힘든 타고난 인간 본성에 더 가깝다. 신성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해서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하는 인간 비극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이자 갇혀 있던 세계를 뚫고 나오려는 인간의 위대한 탐구 정신이 아닌가 싶다. 신도 그런 역동적인 인간 정신을 정체된 노트르담의 건축물보다 더 귀하게 여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시도는 인간의 영속성을 추구하는 본능 아닐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고 괴테의 책 <파우스트>에서 신이 말했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지칠 줄 모르는 인간의 시도는 다른 세계로의 전환이자 인간의 영속성을 추구하려는 본능임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는다.

돌에 새겨졌든 책에 새겨졌든 한 세대를 움직인 관념은 또 다른 세대들을 움직이고 흔적을 남길 것이다. 이것이 저것을 죽여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야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고 마침내 신의 사랑에까지 스스로 눈을 뜨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파리의 노트르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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