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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5-03 16:52
[시애틀 문학-김윤선 수필가] 꽃보다 사람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015  

김윤선 수필가
 

꽃보다 사람

 
정말이지 꼭 죽은 줄 알았다. 지난 봄에 마켓에서 떨이로 파는 나무 한 그루를 사왔다

줄기에서 가지 두 개가 뻗어나가 모양새가 그럴 듯했다. 마침 거실에 나무 하나를 들여놓고 싶던 참이었는데 큰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을뿐더러 늘 푸른 나무여서 안성맞춤이었다.

화분을 바꾸고 흙 갈이를 하고 나니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옳지, 전자파도 막고 미관도 챙기고. 텔레비전 옆에 놓았다. 부지런히 물을 주고 사랑스런 말도 들려주었다.

“얘, 너 때문에 집이 산다.

과연 나무는 보란 듯이 잘 자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점차 나무가 시들해져 갔다. 햇빛이 모자라서 그런가. 그렇다고 그 무거운 화분을 번번이 밖에 내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한 해가 다 지날 무렵, 이게 웬 일이람. 한쪽 가지가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급기야 가지가 물컹물컹해지면서 녹아 내리는 것이었다.

“에잇. 헐은 게 비지떡이지. 그냥 뽑아버리자.

성큼, 가위를 들이대는데 나무의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 아니야.

날 바라보는 남은 한쪽 가지의 눈이 너무 애틋해서 나는 그만 슬그머니 손을 거둬들였다.

이듬해 봄에 번쩍,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병의 전이를 막기 위해 우선 병든 가지를 싹둑 잘라낸 뒤 화분을 앞마당의 나무 사이에 들어 앉혔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비를 맞으면 혹 회생하지 않을까 해서다

속설에 연로한 환자의 기운을 되살리기 위해 동기(童妓)를 품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실내의 나무를 밖에 내놓았다가 자칫하면 죽음을 재촉할 지도 모를 일이어서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앞마당이 동쪽이라 종일토록 강한 햇빛을 받는 게 아니어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과연 나무는 친구들을 벗 삼았는지 생기를 더해갔다. 저만한 때 부모 팔아 친구 삼는다 하지 않던가. 숨이 턱턱 멎을 만큼 좍좍 퍼붓는 빗물에 물에 빠진 강아지 꼴이 돼도 나무는 되레 장난기를 내보이며 푸름을 더해갔다

아침마다 내려 쬐는 햇빛을 듬뿍 받아서인지 키도 훌쩍 자랐다. 살을 부비며 친구들과 짓궂게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이윽고 겨울이 돼서 화분을 집안으로 옮길 때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죽어가던 나무에서 다른 가지 하나가 새로 생겨나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푸른 이파리까지 달았다.

사람의 삶 또한 나무의 그것과 무엇이 다를까. 한 순간에 변해버린 이국의 환경에 나는 좀체 적응하지 못했다. 쉬 뚫리지 않는 언어 장벽과 다른 문화 때문에 더 잘 살려고 온 세상에서 얻은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고속도로의 출입구를 드나들 때면 그곳이 그곳인 듯해서 방향 감각을 잃곤 했는데 그때의 내 모습이 벽에 갇힌 채 전자파나 막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나무와 무엇이 달랐을까.

사람이 건강하게 사는데 가장 필요한 건 사람과의 소통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다. 관계라는 게 어찌 재미있고 쉽기만 할까마는 갈등으로 빚어지는 애중마저도 삶의 빌미가 되고 의미가 된다는 말일 게다

이민자들이 제 민족마다 저들의 사회를 이루고, 갈등과 분열을 거치면서도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가치를 아는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어릴 때 읽은 동화 ‘키다리 아저씨’가 생각난다. 담장 구멍을 통해 들어온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겨울 정원에 꽃을 피운 것처럼 소통이야말로 건강한 사회의 밑거름이 아닐까 싶다. 그 즈음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친구와 한바탕 사설을 늘어놓고 나면 마치 영양주사 한 대를 맞은 듯 은연중에 웃음이 돌았으니 말이다.

봄 내내 여름 내내 친구들의 재잘거림 속에서 얻은 나무의 새 살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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