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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7 10:23
[이효경의 북리뷰]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원치 않는 노동을 시작했을까?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4,130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나쓰메 소세키 『그 후』 (민음사∙2003)
 

성공적인 삶에 대한 획일적인 답은 없는 듯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야말로 좋게 봐서 고상한 백수이다.
나이는 서른이 되었을까? 우수한 머리에 대학교육까지 받았지만 달리 직업은 없다. 딱히 일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으므로 구직은 그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매달 용돈을 받으러 아버지에게 손을 벌린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아버지를 의지해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업이 없어서 불안해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위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얻는 것은 그에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꽃과 향수와 음악을 좋아하며 외국 서적을 찾아 주로 읽고 깊은 사색을 즐긴다. 낮잠을 자다 겹 동백의 꽃송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예민한 신경은 그가 살아가는 방식에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백수가 집안에 있다면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반응은 대충 짐작이 간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며 장가도 가지 않으려는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사업 때문에 늘 바쁜 형은 이런 한심한 동생을 돌아볼 여유는 없다

남편이 집을 비우는 동안 시동생이랑 말벗 삼아 심심풀이로 대화를 나누긴 하지만 형수에게까지 돈을 빌리러 오는 시동생은 이해하기 힘든 집안의 골칫거리이다.
 
할아버지에게 늘 잔소리를 듣고 사는 삼촌의 존재는 조카들을 귀찮게 할 뿐이다. 심지어 집안 일을 돕는 일꾼도 이런 고상한 백수를 주인으로 둔 것에 어딘지 모르게 빈정대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가정의 울타리라서 이 정도이다. 둘도 없는 친구라도 이런 백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사회와 국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과 같은 포스트 모던시대를 사는 시대에도 그러할진대, 한 세기 전의 이야기라고 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남자는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그 후』에 나오는 주인공 다이스케다. 다이스케는 성인이 다 되어서도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않고, 철부지같이 아버지에 기생해서 살아간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다이스케라는 인물은 한심하기 짝이 없고 부모의 경제적 여유만을 먹고 사는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런 인간 부류로 치부해도 마땅할 것 같다.

상대적으로 그의 대학 시절 친구였던 히라오카는 사회에 나가 교육 받은 인간의 구실을 하고자 분투한다. 설령 그가 사회에서 실패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해도 히라오카를 향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자연스럽다. 히라오카처럼 삶의 역경을 겪는 사람들 때문에 다이스케는 더욱 저급한 인간으로 폄하하기 쉽다.

우리는 모두 쓸모 있는 인간으로 사회와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은연중에 갖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다이스케의 아버지 또한 한량같은 아들을 안타깝게 생각해, 돈은 못 벌어도 좋으니 맘 잡고 뭔가를 하라고 그를 재촉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로서 서른이 다 된 아들이 하루빨리 독립해서 인간다운 구실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문제는 다이스케에게 이런 아버지의 설교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아무 생각이 없고 못 배운 망나니 같은 자식이어서가 아니다. 아버지는 그를 빈둥거리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나름의 의미 있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활만을 위한 일이란 신성한 노동이 아니다
 
다이스케는 단지 생활만을 위한 일이란 신성한 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성한 노동이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빵과는 무관한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래서 다이스케 자신은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스스로 다행스럽게 여길 뿐이다.

이런 다이스케와 논쟁을 벌이는 친구 히라오카도 아직 사회 경험을 해보지 못한 철모르는 어린아이로 그를 취급한다.


친구 부인 사랑하면서 생활 전선에 떠밀려 

다이스케에게도 생활을 위한 타락한 노동을 해야만 하는 반전의 현실이 찾아온다. 그는 친구 히라오카의 아내인 미치요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아버지와 가족을 대거 실망하게 하고 결국 집에서 쫓겨나 더 이상 경제적인 부요함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다이스케를 줄곧 한심하게 생각해 왔던 독자들은 마침내 그의 등을 떠밀어 세상에 내몰며 통쾌한 기분마저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 도의적인 면에서도 다이스케를 인정해 주기는 쉽지 않다.

다이스케는 하루 아침에 안락한 집 안의 삶에서 내동댕이쳐져 그가 경멸하던 세상 속으로 던져진다. 여유 있던 상류층 백수의 생활이 이제는 그에게 불가능해졌다. 미치요를 부양하기 위해 신성하지 못한 그 노동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하는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갑자기 세상에 내몰리게 된 다이스케는 모든 것이 타 들어갈 것만 같은 심리적 압박을 느끼게 된다. 일자리를 찾아 밖으로 뛰쳐나온 다이스케가 거리를 방황하며 머릿속이 온통 다 타버릴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여기서 소설은 끝이 난다.

 그 후의 삶이 궁금한 상태로 책 『그 후』는 끝나

다이스케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원치 않는 노동을 시작했을까? 다이스케의 그 후의 삶이 무척 궁금한 상태로 책 『그 후』는 끝났다.

저자인 나쓰메 소세키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쯤의 시대를 일본에서 살았다. 소설의 무대도 19세기 말과20세기 초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거치며 구미 열강을 따라 잡기 위해 개혁과 변화를 급속히 이루는 때이다.

근대화를 국가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자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물결로 온 나라가 정신없이 새로운 시대를 향해 질주하고 있을 당시였다.

그가 일본의 국민작가로 인정받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근대 일본사회의 결말을 일찌감치 조망했고, 그것의 실상과 모순을 작품을 통해 간파해 내었다는 데에 큰 의의를 두고 있다고 한다

나쓰메 소세키 자신도 일본 근대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이미 산업화를 이룬 서양세계를 보고, 일본 근대화를 통해 상실된 인간성을 이미 맛보았는지 모르겠다.
 
소설 속 다이스케라는 인물은 일본의 근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려고 일부러 만들어 낸 작가의 산물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100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의 간극이 있었지만, 다이스케라는 인물은 지극히 현 시대적인 시의감이 드는 인물이었다. 오히려100년 전 이 책의 독자들이 다이스케를 이해하기 힘들었을지는 몰라도,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를 이해하고도 남지 않을까?
 
근대 사회가 인간 정신 세계를 풍부하게 해주지는 못해
 
근대 사회가 인간의 삶을 경제적으로는 윤택하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정신의 세계를 풍부하게 해 주지는 못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인식한 지 오래고 그 문제를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경험해 봤다.

사회와 국가가 표방하는 사람 구실을 하는 그 삶이란 것이 결코 인간 개개인에게 유익하고 의미 있는 일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세상에 이미 폭로된 지 오래다. 그래서 다이스케의 삶이 현재를 사는 나에게 더 매력적이게 보였던 이유일지 모른다.

그의 정신의 세계는 나태한 부르주아로 취급해 버리기에는 사실 너무 흥미로웠고 눈부시게 찬란한 면이 있었다. 그의 눈으로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가진 빈틈없는 이성에 감탄하게 된다.

세상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의 자신감과 여유로움이 돋보였다. 그의 편에 서면, 생각 없이 세상이 정해준 기준만을 쫓아가는 사람들로부터 분리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새롭게 사회와 구성원을 바라보게 해 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달리고 쫓아가고 있는지?
 
다이스케라는 인물이 바로 그 문제 제기를 일본 근대화의 초두에서 시도했듯이,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묻고 있다고 본다. 세상 밖으로 한 발짝 걸어 나와서 무엇을 위해 모두가 열심히 달리고 쫓아가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라 한다.
 
소설의 주변 인물들은 저마다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다. 그러나 모두 마음에는 공허함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고 성공한 인생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이스케만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삶의 의미를 찾은 사람으로 두각을 나타낼 뿐이다

경제적인 부를 이루었지만, 인습과 관습에 얽매여 살아가는 다이스케의 아버지, 아내와의 관계는 미처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먹고 살기 위한 직업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친구 히라오카. 다이스케의 형이 살아가는 방식 또한 사회의 여러 사람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고는 있지만, 정작 주변의 가족들에 관해서는 관심도 여유도 가지지 못하고, 갖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형수도 그런 공허한 삶에 자신을 그저 길들일 뿐 결혼과 가정에 대해 점차 체념으로 일관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동생 다이스케의 혼사에는 지대한 관심이 갖고 어떻게 해서든지 신붓감을 찾아주려고 노력한다. 그런 애씀이 인습에 매인 삶을 벗어나지 못함을 강조해 줄 뿐이어서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런 인물들 때문에, 다이스케의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쫓던 눈을 자신으로 돌리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사회가 원하는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지 자연이 시키는 대로 자연의 인간이 될 것인지를 위해 고민했고, 결국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자연의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다.
 
비록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생활의 타락이 곧 정신의 자유와의 맞바꿈이 될지도 모른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삶의 의미와 정의를 내리고, 그것을 자발적으로 맞이한다는 것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모순된 상황을 해결할 묘책은 별로 없어 
 
저자 자신도 다이스케에게 놓인 모순된 상황을 사회적으로 해결할 뾰족한 묘책을 제시해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런 묘책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읽었던 강상중 씨의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책에서도 우리는 성공적인 삶에 대한 획일적인 답안을 찾지만, 그런 답안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자각시켜 준다.
 
다이스케처럼 그건 우리 각자가 스스로 고민해서 찾아내야 할 문제이고, 찾고자 노력한 흔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
 
다이스케의 그 후의 삶이 놀랍게도 더는 궁금하지 않다.   

hu.jpg





공감 14-02-17 11:28
답변 삭제  
책을 한권 다 읽어버린 느낌이네요. 진짜 다이스케의 그 후의 삶이 궁금합니다.
"원하는 삶을 위해 살기위해 원치 않는 노동을 한다." 매우 공감이 갑니다.
현실은 더 현실적이여서 원치 않는 노동을 해도 원하는 만큼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agree 14-02-18 07:55
답변 삭제  
짧은 문장 속에서도 함축적인 공감이 느껴집니다. 댓글도 우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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