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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5-05 11:50
[서북미 좋은 시-윤석호] 여름은 고무신 자국을 남겼다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542  

윤석호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여름은 고무신 자국을 남겼다
 
 
떠내려가는 공을 쫓다
함께 떠내려간 운동화 한 짝과
남는 한 짝 속의 텅 빈 여름 오후
어머니 오기 전
아기 빠져 죽은 집 우물 속 보다 서늘한
대청마루 밑으로 남은 한 짝마저 던져 넣고
멀찌감치 마당에서
몇 번이고 곁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제 꼬리를 삼킨 뱀처럼
외부를 내부로 숨기려다 뒤집어진
아버지의 양말에서는
숙취의 쿰쿰한 행적들이 피어 올랐고
며칠째 양말을 치우지 않던 어머니는
운동화에 대해 묻지 않았다
 
여름은 발등에 선명한 고무신 자국을 남겼다
예사롭게 아버지 양말을 치우게 된 어머니와
운동화를 사러 시장에 갔다가
크고 다부진 녀석의 팔짱에 끼인 내 공을 보았다
장바구니를 이고 걷는 긴 어머니의 그림자 곁에서
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따라 걸었다
한쪽을 잃으면 다른 한쪽도 내놓아야 하는 것들,
내 것이지만 우길 수 없는 것들,
 
여름 해는 하늘을 새까맣게 태우고
마루밑 운동화는 사리처럼 기억속에서
여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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