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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25 14:54
[이효경의 북리뷰]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 (민음사∙ 2012)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3,497  

이효경(UW 한국학도서관 사서)


"진실로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이란 잘못 그린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두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남은 부분을 계속해서 그려나가는 용기 아닐까"
 

작가 헨리 제임스는 미국 태생이지만 말년에 영국으로 귀화한 19세기 소설가이다.

그의 대표작 『여인의 초상』을 찾아 읽게 된 것은 그가 유럽의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다 만나게 된 어느 여인을 극찬했던 글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여행기에 나온 인물 묘사는 주로 외모에 대한 언급뿐이었는데 상하로 나뉜 그의 방대한 작품 속에 그려낼 여인의 초상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물론 소설이긴 하지만 여인의 삶을 그린 글이라면 모두 이해해 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그것은 나의 어머니의 삶일 수도 있고 아내와 누이와 심지어 딸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기에 그러하다.

주인공 이사벨은 완벽에 가까운 젊고 훌륭한 여성
외모뿐 아니라 '고상한 정신'에 도취되고 매료돼
 
헨리 제임스 소설의 주인공 이사벨은 어느 면으로 보나 완벽에 가까운 젊고 훌륭한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미모나 패기 발랄함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는다. 얼굴만 예쁜 성형 미인도 아니고 똑똑함과 지적 자만에 쌓여 범접하기 어려운 여인도 아니다.
 
그녀에게서 전체적으로 풍기는 생기(生氣)는 그녀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진 고상한 정신과 더불어 주변 사람을 도취시키고 매료시킨다. 오래되고 정체된 영국 저택에 미국에서 불어온 신대륙의 신선한 바람과도 같은 충격이라고나 할까.

소설의 무대는 영국 상류 집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미국에 살던 이사벨이 영국 가든 코트에 사는 이모의 집으로 방문을 오게 되면서 시작된다.
 
터쳇 이모와 이모부 내외는 물론 사촌오빠 랠프의 호감을 단번에 사로잡은 이사벨은 터쳇 가와 가깝게 지내던 이웃 워버튼 경의 청혼까지 받기에 이른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선남선녀들만 출연하는 평범한 동화책을 읽는 듯 하다. 예쁘고 똑똑한 여자와 멋지고 부유한 영국 귀족의 그림 같이 로맨틱한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막 전개되려 한다.  

주인공 이사벨은 소설속 이상적 결혼을 여지없이 거부해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이사벨은 소설 속 이상적 결혼을 기대에 찬 마음으로 읽고 있던 독자의 뜻을 여지없이 저버린다.  최고의 신랑감 워버튼 경의 청혼을 단번에 거절한다. 다시 없을 인생 최고의 기회를 사양하는 이사벨의 단호함은 같은 여성으로서도 그녀의 선택이 의아스럽다.
 
가엾은 워버튼 경은 아무리 구혼에 매달려 봤자 이사벨의 결심을 더욱더 굳히게만 한다. 그녀의 청혼 거부는 터쳇 이모의 일가 모든 식구에게도 충격이었다. 그의 사촌 오빠 랠프도 놀란 건 사실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이 특별한 여인 이사벨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를 계기로 증폭되어 간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여주인공 이사벨이 왜 멋진 영국 귀족의 청혼을 거절했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당신과 결혼하면 제 운명을 피해야 해요. 정말 많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이지만 다른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해요. 전 이런 예외적인 생활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어요. 외면하거나 나 자신을 분리하는 방식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어요.”
 
이사벨이 가진 고상한 정신이란 자신 스스로 인생을 보고 사는 것이다. 그녀는 세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더 많은 곳으로 여행하며 넓고 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어한다.
 
틀에 박힌 영국 귀족 삶보다는 자신의 세계 위해 청혼 거절

워버튼 경의 부인이 되어 안락하지만, 틀에 박힌 영국 귀족의 삶을 누리는 것보다 그녀 자신만의 세상을 만나보기를 더 간절히 사모했다. 결혼으로 인해 잃게 될지 모를 자신의 삶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기에는 이사벨이 그리고자 했던 본인의 초상이 아주 확고했던 것 같다.
 
여기에, 모험적이고 자유분방한 이사벨의 삶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이기도 했던 이사벨의 사촌 오빠 랠프이다. 랠프는 이사벨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무모하게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지는 않는다.
 
아마도 본인이 오랫동안 앓고 있는 폐병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랠프는 이사벨이 선택한 자신만의 삶을 마음속 깊이 강력히 지지해 준다

그의 심적 지지는 물질적 후원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으로 돌아올 유산의 막대한 일부를 그녀에게 주도록 손을 쓴다. 물론 이사벨이 눈치채지 못하게 이 일을 계획한다. 그가 아버지에게 이사벨을 위한 유산을 부탁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인데 이사벨을 향한 랠프의 마음이 어떠한지 자세히 읽어 볼 수 있다.
 
전 오래 살지 못하겠지만, 사촌이 어떤 삶을 영위할지 볼 수 있을 만큼은 살고 싶어요. 저 같은 사람이 영향을 끼칠 필요가 없을 만큼 독립심이 매우 강하거든요. 그녀의 돛에 바람을 좀 불어넣고 싶어요.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힘을 불어넣고 싶다는 거죠. 예를 들면 그녀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하니 지갑에 돈을 넣어 주고 싶다는 뜻이에요. 충분한 수입만 있다면 생계 때문에 결혼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건 제가 막고 싶은 일이에요. 이사벨은 자유를 갈망한답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자유로워질 거예요. 저는 이사벨을 부자로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건 제 상상력의 요구를 충족해 주는 일이죠. 그러기 위해 아버지를 이용하는 건 괘씸한 일이지만요.”

주인공 이사벨, '결핍'에 끌려 뜻하지 않게 쉽게 결혼
 
랠프는 이사벨을 통해 자신이 살아보지 못했던 삶을 살고자 했다. 그것이 랠프가 그리고자 했던 여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그의 상상처럼 펼쳐지지 않고 중도에 좌절된다.
 
이사벨이 이모부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받게 되고 그것으로 자유롭게 유럽 여행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엉뚱하게 아무것도 자랑할만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오스먼드씨와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랠프는 충격과 굴욕감을 한꺼번에 맛보게 된다. 이사벨을 통해 그가 누려보고 싶었던 상상력의 요구는 충족되지 않고 바로 추락해 버렸는데 랠프는 그것을 처절히 맛보아야만 했다. 이사벨이 오스먼드씨와 결혼한 후 급격히 저하되는 랠프의 건강은 잃어버린 그의 꿈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여주인공 이사벨이 뜻밖의 결혼을 결정하게 된 논리는 주목할 만하다. 워버튼 경이 너무 완벽해서 그를 거절한 것이라면 오스먼드씨는 그의 결핍이 되려 매력으로 작용하여 이사벨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셈이다.   
 
오스먼드씨가 돈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 마음에 들어. 다행히 내게 돈이 많다는 게 지금처럼 고마운 적이 없었어. 내가 돈이 없는 남자, 상당한 위엄과 무관심으로 가난을 견뎌 온 남자와 맺어질 수 있도록 해주신 거니까. 오스먼드씨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어. 이모님은 내가 아무런 장점도 없는 재산도 칭호도 명예도 집도 땅도 지위도 명성도 그러니까 뭔가 훌륭한 소유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만족한다는 데 경악하셨어. 그런데 내 마음에 드는 건 이런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인걸. 오스먼드씨는 무척 외롭고 교양 넘치고 정직한 남자야.”
 
이사벨이 이러한 선택을 내리게 된 것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해 보고자 한다면, 그녀가 물질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형편이었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오스먼드씨와의 결혼을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맘껏 자유롭게 세상을 사는 것을 보기를 원해서 그녀를 위해 날개를 달아주고자 마련한 막대한 유산이 결국 따분한 딜레탕트의 비위나 맞추며의붓딸까지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 일로 전락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맞게 된 것이다.
 
인생은 한 곳을 가득 채웠다 싶으면 반대편의
모든 것을 비워야 하는 모래시계를 보는 것 같아

 
인생은 꼭 이렇게 한 곳을 가득 채웠다 싶으면 반대편의 것을 모두 비워내야 하는 허무한 모래시계를 보는 것과 같다.   
 
랠프가 바랬던 여인의 초상은 이사벨의 결혼으로 무참하게 깨어졌다. 이사벨도 자신이 꿈꾸었던 초상에 금이 가고 있음을 막상 오스먼드씨와 결혼 생활을 하게 되면서 서서히 인식해 간다. 그녀가 들어와 사는 오스먼드씨의 집은 점차 암흑의 집, 침묵의 집, 질식의 집이 되어 그녀의 숨통을 틀어막는다.
 
이사벨은 오스먼드 씨의 가난을 명예로 어리석게 미화했었고 그것이 그녀의 멋진 이론이 되어 평생 그녀를 지지해 줄 것으로 믿었었다. 그녀를 지금 꼭꼭 둘러싸고 있는 집 벽이 평생 그녀를 가두어 둘 것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주인공의 자유분방함은 남편의 인습 및 전통과 충돌해
 
공포의 실체는 남편 오스먼드씨의 인습과 전통을 중시하는 삶이었는데 그녀의 자유분방한 생각과 개성은 번번이 남편과 충돌을 일으켰다. 남편의 생각 앞에서 자기 생각은 접어야 하거나 하나의 부속품 정도로만 취급되도록 요구되었고, 생각이 너무 많은 이사벨은 남편에게 불필요하고 심지어 모욕으로 간주되었다.

오랫동안 계승되어 온 오스먼드씨가 지켜온 인습의 바퀴에 이사벨의 초상은 가차 없이 깔리게 된다.
 
헨리 제임스는 이사벨을 비롯해 소설의 여러 주인공이 각각 처한 상황에서 겪고 있는 내면의 심리를 리얼하고도 예리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독립적인 미국의 삶과 전통적 영국의 삶과의 대립이 만들어 내는 충돌 속에서 한 개인이 느끼게 되는 갖가지 심리의 서술은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이란 현실이 그녀의 꿈을 실현해주지 못할 때 함께 슬펐다'
주인공, 잘못된 선택 앞에서도 탈출과 회피보다는 고난과 정면대결
 
소설을 읽으면서 이사벨이라는 인간의 내면을 여러 번 샅샅이 훑고 나온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여인과 어느새 동화되어 그녀의 불행한 초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힘겹게 느껴졌다. 진정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고자 했던 이사벨의 야망과 의지에 힘껏 박수를 보낸 것만큼 결혼이라는 현실이 그녀의 꿈을 실현해 주지 못했을 때 함께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촌 오빠 랠프도 마지막으로 이사벨에게 남편을 떠나 새장으로부터 자유로운 새가 되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그녀는 새장 속으로 자신을 다시 밀어 넣는다.
 
그것이 작가 헨리 제임스가 소설을 마무리하며 이사벨을 진정으로 가장 그녀답게 그려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난 곤경에 빠지더라도 절대로 불평하진 않겠어. 그녀는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녀 앞에 똑바른 길이 보였던 것이다.”
 
쉽고 곧은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사벨이 마침내 자신의 잘못된 선택 앞에서도 탈출과 회피를 시도하기보다는 고난과 정면 대결해 나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렇다. 그녀가 남편을 버리고 안락한 삶으로 무작정 도피하는 것은 우리의 여주인공 이사벨답지 않다. 처음부터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하는 여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그녀가 영국 귀족의 청혼을 거부할 때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꿈꿔온 여인의 초상을 완성하기 위한 그리기 작업은 지금도 계속

자신이 꿈꿔온 여인의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 묵묵히 어려운 길을 하다
 
그녀는 원래 자신의 모습인 이사벨로 남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자신이 꿈꿔온 여인의 초상을 완성해보고자 세상에 자신을 다시 던지며 어려운 길을 묵묵히 선택한다

세상에 쉽지 않은 길이 어디 있으랴. 이사벨이 워버튼 경의 꿈 같은 청혼을 수락해서 살아갔다면 그녀의 삶은 과연 동화책처럼 아무 문제 없이 평탄하기만 했을까?
 
누구나 살면서 자신만의 모습을 그려간다. 자신의 초상을 완벽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님을 이 책은 깨닫게 해준다. 진실로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이란 혹 잘못 그린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두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남은 부분을 계속해서 그려나가는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완성된 작품보다 더 중요한 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 우리의 여주인공 이사벨의 그림 그리기는 아직도 한창 작업 중이다. 그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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