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연출 차영훈)이 시청자들을 울렸다가 웃겼다가 제대로 흔들고 있다. 복합장르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끌고 있다. 이같은 지표는 시청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채널 다매체에서 쏟아내는 드라마의 증가로 전반적인 시청률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동백꽃 필 무렵'은 지난 23일 방송분이 16.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을 달성하는 등 '대박' 성적표를 내고 있는 것. 옹산 마을 전체의 훈훈한 온기와 살인마 까불이의 위협인 살기가 공존하는 '동백꽃 필 무렵'의 매력을 짚어봤다.
동백(공효진 분)이 정착한 옹산 마을은 '1인 가구'와 '차도남' 등의 키워드가 무색한 가상의 공간이다. 옆집의 수저가 몇 개인지, 앞집 장독대의 고추장이 얼마나 익었는지도 속속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다. 소방관은 먼 친척이고 경찰관은 가까운 이웃사촌인 이 마을은 시청자들에 잊고 있던 가족극의 훈풍을 불어넣는다.
동백은 말한다. "이 동네 언니들은 그렇게 나를 싫다고 해도 때 되면 김장김치를 챙겨준다"고. 동백이 때문에 남편들이 까멜리아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싫다면서 애정 담긴 갖은 오지랖은 다 부리는 아줌마들이 있고, 본의 아니게 생긴 오해 때문에 억울하고 괴로우면서도 나름 곰살맞은 미소를 보이면서 살을 부대끼며 다가오는 동백이가 있다.
이런 마을에서 동백이 구성한 가족 아닌 가족은 뭉클함마저 안긴다. 남편이 없는 동백과, 아빠가 없는 아들 필구(김강훈 분),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갔다가 치매를 안고 돌아온 엄마 정숙(이정은 분), 툭하면 남의 라이터를 훔치고 술을 훔쳐 마시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친구 향미(손담비 분), 그리고 결핍이 많은 동백의 마음을 채워주는 남자 용식(강하늘 분)이 한 상에 둘러 앉아 만든 가족의 그림은 화려하고 번듯하지 않아도 마음을 녹인다.
가진 것이 없어서 서럽지만, 잃을 것이 없어 더 강하다는 이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한껏 어깨를 편다. "우리 딸 건드리지말라"는 정숙과 "우리 엄마 건들지 말라"는 필구와 "쫄지 않는다"는 동백이와 "이런 나도 기억해달라"는 향미는 연대하면서 힘을 발휘한다.
결핍과 상처를 안고 가족이 된 이들의 연대는 시청자들에 '짠한' 눈물과 온기 가득한 웃음을 자아낸다.
'동백꽃 필 무렵'에는 '살기'도 있다. 시청자들이 기꺼이 이들의 가족이 되어주면서 마음이 움직일수록, 까불이의 위협 역시 더욱 강력하게 다가온다.
'동백꽃 필 무렵'은 1회부터 까불이의 위협을 복선으로 깔았다. 까불이의 존재가 누군지, 까불이에게 살해당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과정에서 일어난 비극의 실체는 무엇인지 등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망연자실한 용식의 표정에서, 들것에서 툭 떨어진 여자의 손목에 채워진 게르마늄 팔찌에서, 보는 이들의 눈물 등에서 비극은 이미 예고된 바다.
드라마는 살인마와 가족극이라는 전혀 상반된 두 가지 요소를 영리하고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옹산 마을의 훈풍이 더욱 진해질수록, 이들이 만든 가족애가 더욱 끈끈해질수록 이미 예고된 비극의 살기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미 인물에 깊게 몰입하고 감정적인 지지를 보내는 토대를 잘 쌓아올린 덕분에 후반부에도 극은 긴장감을 잃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두 가지 요소가 제대로 충돌한 지점은 지난 24일 방송분이었다. 향미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고 마침내 이방인이 아닌 동백의 가족이 되는 순간을 그린 것과 동시에, 그가 까불이에게 피살된 것을 암시하는 엔딩까지 그렸기 때문이다. 이에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고, 안방 시청자들이 느낀 감정의 진폭도 컸다.
이제 '동백꽃 필 무렵'은 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선을 넘고 만 까불이의 위협에 동백과 용식이 어떻게 맞설까. 개인의 성장과 타인과 연대를 동시에 그려낸 '동백꽃 필 무렵'이기에, 향후 이야기에도 더욱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