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직업도 다양하다. 접근이 어려운 직업 혹은 그에 대한 판타지를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볼 수 있다는 건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래서 한 직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장르극들이 마니아들에게 각광받는 것이고 이를 조금 더 대중적으로 풀어낸다면 폭넓은 타깃층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중적으로 풀어낸다는 것은 에피소드나 캐릭터를 통해 해당 직업군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는 것일 터. 이때 시청자 혹은 관객들은 자신이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전제하고 있다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지난 8일 오후 4시30분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특종 : 량첸살인기'(감독 노덕 / 이하 특종) 언론시사회에서는 때아닌 직업군과 관련한 리얼리티 왜곡이 지적됐다. '특종'은 어제의 특종이 오늘의 오보가 되고만 기자 허무혁(조정석 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는 영화다. 허무혁의 속도 모른 채 시청률을 위해 특종을 키우려는 보도국부터 그의 특종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까지, 얽히고설킨 관계가 펼쳐진다. 조정석을 비롯해 이미숙, 김의성, 이하나, 배성우, 태인호, 김대명 등이 출연한다.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노덕 감독에게 던져진 주된 질문은 "언론을 우화적이고 비판적으로 다루는데 관객들이 이를 리얼리티로 받아들일까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허무혁이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린 보도로 인해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한 것을 지적하는 질문이었지만 다소 영화가 나타내려는 본질을 벗어났다는 생각이다. 노덕 감독은 "현실을 반영했다기 보다 이야기 안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과장되게 표현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며 "과장, 오버, 유머러스한 요소 등은 장르적 특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특종'은 기자의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직업군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영화가 아니다. 노덕 감독 역시 "허무혁이라는 인물이 기자를 대표하기 보다는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서 "기자 역시 월급쟁이라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기자이기 때문에 사실과 진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모두가 맞이하는 순간의 보편성을 갖고 있는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영화가 지향하는 메시지에 대해 설명했다. 기자라는 직업은 메시지를 그리기 위한 장치일 뿐 기자라는 직업을 전면에 내세워 그의 직업 세계를 그리는 영화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진짜 혹은 가짜를 가려내는 건 우리 일이 아냐. 대중이 그걸 진짜라고 믿으면 그게 진실인 것"이라는 백국장(이미숙 분)의 대사는 영화의 메시지와 맥락을 같이 한다. 많은 현대인들은 사실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가공되고 가공된 진실이 만든 프레임 속에 갇혀 살아간다. 무엇이 진실일지 알려고 하기 보다 수동적으로 가공된 진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전한다. 때문에 '특종'에서 그려진 기자의 직업군이 리얼리티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화법을 보면 리얼리티 왜곡은 작품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성질이 논픽션인지 픽션인지 봤을 때 '특종'은 후자에 해당되고 특히나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고발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또한 문제적 접근으로 감독의 의도에 도달하는 영화도 아니며, 단지 허무혁이라는 가상의 인물과 유머러스한 상황을 통해 현실을 비틀어 풍자해 보여주는 장르적 특성이 강한 작품일 뿐이다. 영화에 대한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은 교류될 수 있지만 영화의 본질을 간과한 의견으로 영화에 또 다른 프레임을 씌울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관객들이 '특종' 속 기자들의 모습을 리얼리티로 받아들일지 말지는 굳이 우려할 필요가 없다. 이미 수많은 직업군이 미디어를 통해 소비돼 왔던 만큼 수고롭게, 애써 우려하는 등 여기에 에너지 소모를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복합 장르의 오락 영화가 관객들을 자성케 하려 작정한 것은 아니겠으나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곱씹어 보는 것이 생산적일 수 있겠다. '특종'의 결말 역시 관객에게 진실을 능동적으로 파악해갈 것인지 질문하고 선택의 여지를 남겨둔다. 그 전에 영화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즐기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 같다. 오는 2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