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와 배우 송강호가 각각 성년과 데뷔 20주년을 맞이했다.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는 어느새 부산국제영화제의 20여 년이라는 세월과 함께 흘러 왔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최근 개봉한 영화 '사도'까지, 총 8600만 관객을 동원한 한국 대표 배우 송강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송강호는 5일 오후 3시40분 부산 벡스코 제4전시장 내 이벤트홀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의 커튼콜에 참석했다. 송강호가 참석한 커튼콜은 아시아 영화를 전세계에 알리고, 세계적인 명성 뿐만 아니라 국내외 시장에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중견이상의 대표 배우 1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커튼콜은 향후 매년 아시아를 대표하는 1인을 선정할 예정으로 첫 해인 올해는 영화 '설국열차', '변호인', '박쥐' 등으로 다수의 수상경력과 해외진출을 통해 국내외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한국의 송강호가 선정됐다. 송강호는 커튼콜 헌정무대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부산국제영화제 20주년의 개막식 사회도 맡아 의미를 더했다.
이날 송강호는 데뷔 초기작부터 대표작, 그리고 최근 개봉된 영화까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되돌아보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송강호의 연기에 대한 소신, 그리고 해외 진출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자신의 연기가 부끄럽고 닭살이 돋아 잘 보지 않는다는, '연기의 신'의 의외의 대답도 놀라웠던 커튼콜이었다.
이하 오동진 영화평론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이번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의 사회자와 커튼콜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 내게도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의미가 있다. 영화로 데뷔한지가 20주년이다. 그래서 올해 부산영화제는 더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통해 데뷔했다. 같이 데뷔한 홍상수 감독은 거장으로서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가 운이 좋았다. 함께 다시 작품을 할 기회가 올 뻔했는데 다른 작품을 일주일 전에 결정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친 기억이 난다.
▲ 출연작 중 1000만 영화가 두 편이나 된다. 다음 영화가 1000만이 안 되면 어쩌나하는 이런 불안감이 생기나. - 솔직히 전혀 없다고 말씀은 못 드리겠다. 왜냐하면 다른 분들이 기대를 하고 계시니까. 거기에 걸맞는 연기와 결과가 나와주기를 바라는 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1000만이라는 숫자의 개념보다는 많은 분들에게 인정 받고 격려를 받는, 그런 작품이 되기를 원하는 거다.
▲ '사도'에서 저음에 갈라지는 목소리를 연기하더라. 그런 목소리는 어떻게 만드나.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 물리적인 영조 대왕의 나이도 중요했지만 조선의 왕으로서의 정치가의 모습, 순탄치 않았던 삶의 굴곡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것들이 목소리와 외모를 통해 느껴지길 바랐다. 목소리는 목을 좀 혹사해서 일부러 허스키하게 만들었다.
▲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등 세계적인 감독들과 함께 했다. 가장 성격이 맞는 감독이 있나. - 감독님들이 개성이 다 강하다. 어떤 감독이 더 맞다기 보다 각자 개성들이 다 있는 것 같다. 각각의 느낌도 다 다르지 않나 싶다.
▲ 봉준호 감독과 왠지 더 친할 것 같다. - 상대적으로 편하다. 후배니까. (웃음) 박찬욱, 김지운 감독은 선배라 어려운 점이 없지 않아 있다.
▲ '설국열차'를 통해 경험한 할리우드 시스템은 어땠나. 함께 출연했던 틸다 스윈튼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났는지. - 틸다 스윈튼과는 이번에는 직접 만나뵙지 못했다. '설국열차'는 말로만 듣던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찍었다. 당황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경험이 처음이라 인상적이었다.
▲ '설국열차'에서 딸로 출연한 고아성은 어떤 배우인 것 같나. - 고아성은 배우로서 입지를 다지고 출발한 것 같다. 그전에는 아역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성인 연기자로서 많이 성숙돼 있고 그런 과정에 있지 않나 싶다.
▲ 본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편의 영화는 무엇인가. - 굳이 한 편을 꼽으라면…. 저도 못 뽑겠다. (웃음) 개인적으로 가끔씩 출연작을 다시 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가장 인상적인 한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반칙왕'이다. 그 영화가 가장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첫 주연작이라는 그런 의미 보다는 '반칙왕' 주인공인 인물에서 배우로서의 희노애락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첫 주연작이기도 하지만 굉장히 그 인물이 배우 송강호와의 정서적인 동질감 이런 것들이 많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 '밀양'에서 맡은 역할은 사실 두드러지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배우로서 굉장히 힘든 선택이지 않았나. - 전혀 아니다. 저 작품에서 종찬이라는 역할은 딱 그런 포지션이었다. '밀양'이라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설명시키는 데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배우가 어떤 작품에서 비중이나 스포트라이트 개념 자체를 굉장히 자유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간 송강호가 모은 관객수를 계산해봤나. - 하하. 배우들은 그런 계산을 안 하는데 언론에서 재미로 많이 얘기해주시더라. 배우들은 어떤 누구도 계산해보진 않는 것 같다. ▲ 8600만을, 거의 1억 명을 모았다. 20년 동안. 1000만 돌파 영화는 '괴물', '변호인' 두 편이다. - (웃음)
▲ '변호인'의 마지막 변론 장면은 송강호가 갖고 있는 연기적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JSA 공동경비구역'에서 이병헌과 헤어지는 판문점에서의 장면과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런 연기 에너지가 폭발하는 순간을 편집되고 나서 보면 어떤가. - 다른 배우들도 그런 것 같다. 민망해서 못 본다. 자기 연기가 너무 부끄럽고 닭살이 돋는다고 해야 할까.나만 그런 게 아니라 배우들 모두 다 자신의 부족하고 아쉬운 것만 보인다.
▲ 해외 진출 계획은 없나. - '설국열차'는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자본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미국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는 모르겠는데 해외진출이 어떤 과제나 목표는 아닌 것 같다. 그냥 정말 바람직한 모습은 많은 세계 팬들과 아주 우수한 한국 영화를 통해 서로 공감하고 과정을 공유하는 것이 더 진정한 의미의 진출이 아닌가 싶다.
▲ 송강호가 도전하고 싶은 배역이 있나. - 안 해봤기 때문에 해보고 싶다는 건 없다. 워낙 장르와 캐릭터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운명처럼 다가와주길 바란다.
▲ 책과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더 많이 읽나. 연기자로서 인풋은 어디서 얻나. - 시나리오보다는 수 많은 저널을 통해 세상을 간접 경험하고 느끼는 편인 것 같다.
▲ 본인 출연작 외에 다른 영화들은 많이 즐겨 보나. 있다면 어떤 영화가 인상적인가. - 최근에 '사도'라고 있다. 농담이다. (웃음) 여름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베테랑', '암살'도 다 봤다. 너무 재미있게 봐서 영화 뒤풀이 장소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 후배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내 위로도 선배님들이 많다. 난 한참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다.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줘야 하는, 그런 위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신 경험이 많기 때문에 경험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면 내 경험을 통해 이야기해주는 편이긴 하다.
▲ 가장 친한 후배 배우가 있나. - 신하균이다. 어릴 때부터 작품을 같이 했다. 이외에도 다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송강호를 사랑하는 영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이런 자리에서 작품 얘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될까 생각해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다. 특히나 부산국제영화제가 20주년이 되기도 하고, 의미 있는 자리에서 격려를 받아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한국 영화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위치의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