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참 잘 살았다" 좋은 사람, 김주혁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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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김주혁이 세상을 떠났다. 오후 그는 개인 스케줄을 위해 차를 끌고 나갔다가 사고가 났고, 차선을 이탈해 아파트 벽면을 부딪히고 전복된 차 안에서 발견됐다. 119 대원들은 그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오후 6시 30분께 사망했다.
불과 3일 전까지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였다. 갑작스럽게 전해진 사고 소식은 그의 지인들은 물론, 대중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또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한 그를, 작품에서 또 현장에서 만났던 기자들 역시 마음 무거운 시간들이었다. 김주혁을 떠나보내며, 그의 마지막 인터뷰와 마지막 미소를 다시 한 번 기억해본다.
◇. "기자 고충 이해해" 故김주혁, 마지막 인터뷰를 추억하며(장아름 기자)
고(故) 김주혁의 마지막 언론 인터뷰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9월 말에 이뤄졌다. 당시 인터뷰는 고인의 생애 마지막 드라마가 된 tvN 드라마 '아르곤' 종영과 관련해 마련된 자리였다. 당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단지 고인의 마지막 인터뷰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르곤'에서 정직한 보도를 추구하는 김백진 역을 맡아 열연했던 만큼, 드라마와 관련해 만난 기자들과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김주혁은 특유의 친근한 반말투로 인터뷰 분위기를 편안하게 주도하기도 했다. 배우로서 다소 민감하게 여길 수 있었던 기자들의 질문에도 경계 태세를 갖추거나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었다. 지나치게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가 연기에 대한 기사 보다 부각되고, 이슈 기사로 소비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그게 사실인데 뭐"라고 말하거나 "그냥 웅성거리고 말겠지"라고 무덤덤하게 넘겼다.
공개 열애에 대한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에도 "으이구"라고 장난스럽게 타박하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기사화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최선의 답변을 전하면서 이슈와 관련한 질문을 전할 수밖에 없는 기자들의 고충에도 공감해줬다. "기자들도 뜻대로 안 되는 거 아니까. 각자 이상향이 있는데 그것대로 안 되는 거 알고 있어. 기자들이 뜻대로 기사를 쓸 수 없는 것은 연기가 내 뜻대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던 김주혁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부득이하게 맞지 않는 길로 갈 때가 있지만 그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고 가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를 믿지 말고 판단해달라"는 대사는 '아르곤'에서 김백진을 연기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라고 했다. "나는 그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시청자들에게 각인 될 수 있는 좋은 대사였다"며 대사의 의미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고, 인터뷰 자리에 있던 취재진에게도 "기자들 사이에서도 명언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 웃었다.
무엇보다 김주혁과의 인터뷰는 그의 답변에 거창한 포장이 없었기 때문에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인터뷰 뿐만 아니라 제작발표회 등 작품과 관련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그는 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아쉬워 했고, 취재진의 질문에 섞인 칭찬에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김주혁은 매 인터뷰마다 꾸밈 없는 담백한 답변을 전해왔고 진솔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를 바랐다. 약 20년간 꾸준히 해온 연기에 있어서도 과장된 연기가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연기를 추구했던 이상향과도 맞닿아 있던 그의 실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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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스틸컷 | ◇. 김주혁의 빈소를 가던 날 (정유진 기자)
故 김주혁의 장례식 이틀째 날. 집을 나서는데 어느새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충격적인 비보에 넋 놓고 산 며칠 사이도 시간이 흘러 계절이 더 깊어졌다. 평소엔 눈길도 주지 않았던 나뭇잎의 빛깔이 그날따라 유독 고아 보였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를 잃어 슬퍼하고 있을 이 순간, 한가롭게 계절 변화에 감탄하는 스스로를 보며 마음 한구석에서 민망함과 씁쓸함을 느꼈다.
가장 최근 김주혁을 만난 건 4월 말,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의 개봉 전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여러 명의 기자들과 함께 하는 '라운드 인터뷰'라 서로 깊은 교감을 나누거나 심도 있는 대화를 할만한 자리는 아니었다. 아마도 이후 인터뷰이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었다면, 기억을 되돌릴만한 일도 없는, 평범하게 남았을 그런 시간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가 사실 기자들을 만족시키는 인터뷰이는 아니었다. 때론 놀랄 정도로 솔직해서 이걸 기사로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그럴듯하게 부풀려 말할 줄 몰랐고 생각한 만큼, 느낀 만큼만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답을 피하는 질문도 없었다. 예컨대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만족감을 물으면 홍보 직원들의 눈치를 한 번 본 후 "하…잘 (얘기)해야하는데…네"라고 말하거나, 드라마를 또 할 생각이 있느냐는 말에 "노(NO), 체력이 안될 것 같다. '허준' 때 X지는 줄 알았다"고 말해 웃음을 주는 식이었다.
결국 너무 솔직한 탓에 주의 아닌 주의(?)를 들은 듯했다. "홍보팀이 좋아하는 배우가 돼야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거나 "다른 인터뷰에서 '저는 인터뷰를 하면 안 되겠죠?' 했더니 기자들이 모두 끄덕끄덕하더라"고 '셀프 디스'를 하는 바람에 동석한 이들이 몇 번이나 폭소를 터뜨린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적어도 그날 처음 그를 본 내 눈에 김주혁이라는 사람은 포장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아는 걸 모르는 척,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솔직해서 기억에 남던 그를, '흥부'나 '독전'으로 조만간 인터뷰를 또 하게 될 줄 알았다.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 냉철한 앵커로 변신한 모습을 보며 '싫다던 드라마를 하셨군'이라고 생각할 때도, 지난달 27일 영화 '공조'로 남우주연상을 받고 했던 진솔한 수상소감에 감동받았을 때만 해도 말이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듯 정말로 아까운 배우가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좋아해줘'나 '싱글즈' 같은 로맨틱 코미디들을 좋아한다. 20년간 여성들을 설레게 했던 근사한 '한국의 휴 그랜트'는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 故 김주혁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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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 대표이사, 데프콘, 천우희, 조여정 인스타그램 캡처 © News1 | ◇. 당신 참 잘 살았다. (윤효정 기자)
고백하자면, 김주혁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 잘 안다고도 할 수 없다. '김주혁을 떠나보내며'라는 제목에 맞는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몇 년 전 꽤 먼 지방에서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 기자간담회를 가기 위해 툴툴 대며 버스에 몸을 실었던 기억, 그리고 여러 번의 제작발표회와 인터뷰에서 슬쩍 농담을 던지고 멋쩍게 웃던 그의 모습 정도다.
다만, '늘' 현장에서, 작품에서 김주혁을 만나고 김주혁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속사 식구들은 그의 이름에 친숙한 '오빠' '형'의 호칭을 붙였고 늘 그를 좋은 사람이라 말했다. 그와 함께 연기한 배우들은 늘 인터뷰에서 그를 좋은 동료라고 입을 모았다.
김주혁이 최근 들어 배우로서, 조금 더 멋있어졌다고 느꼈다. 편안하고 우직한 인상의 배우였는데, 어느새 날카롭고 입체적인 느낌의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모습. 그래서 그의 차기작 소식이 끊이지 않고 나올 때, 김주혁의 또 다른 '시기'가 올 것 같다는 생각 정도를 어렴풋이 했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하고 느낄 시간도 좀 주지, 이런 이별은 생각도 못 했다.
김주혁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현장'이라는 곳이 그의 장례식장이 될 줄이야. 마음 무겁게 들어간 장례식장에는, 늘 김주혁을 좋아하던 그의 사람들이 가득했다. 늘 그를 '좋은 배우'라 말하던 동료들이 빈소를 찾았고, 늘 그를 '좋은 사람'이라 말하던 스태프들이 그의 가족이 되어 삼일 내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둘째날에는 팬들이 김주혁을 만나러 왔다. 교복을 입은 소녀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온 중년의 아주머니들, 서툰 한국어로 조의를 표한 중국팬까지 모두 짧은 조문을 마친 후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밖으로 나왔다.
김주혁은 생전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참 저놈 잘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단다. 많은 이들이 당신 덕분에 웃고, 또 이토록 마음을 다해 울었다. 당신, 참 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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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영화 '뷰티인사이드' 中 | 김주혁은 지난 1993년 연극배우로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혁은 지난 19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영화 '싱글즈' '아내가 결혼했다' '방자전' '비밀은 없다' '당신자신과 당신의것' '공조' 등에 출연했다.
특히 지난 2013년 12월부터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에 출연하며 '구탱이 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최근 tvN 드라마 '아르곤'에서 정의감 넘치는 기자 김백진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인은 고 김무생의 아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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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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