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의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가 "국민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잠잠해질 겁니다"라는 대사를 뱉었을 때, 국민 대다수는 공감을 하면서도 적지 않게 상처를 받곤 했다.
이는 기득권 층이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비웃는 말이면서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을 만큼 바쁘게 사는 우리 현실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 가슴 아픈 명대사였기 때문이다.
이후 실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 기획관이 "민중은 개 돼지"라는 발언을 했고, 최순실 게이트가 파문을 일으켜 100만 국민이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을 때도 친박계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며 "민심은 언제든 변한다"고 국민의 냄비근성을 비웃었다.
지난 19일 오후 6시20분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역사X힙합 프로젝트-위대한 유산' 특집은 정치권, 기득권 층으로부터 상처받은 다수 시청자들의 마음을 역사로 치유했다. 바로 우리 민족이 단결과 근성으로 위기의 나라를 지켜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일깨운 것.
나라가 어려울 때도, 외세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도, 대한민국을 지킨 것은 기득권 층이 아니라 민중들이었다는 사실로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지난 방송에서 설민석 역사 강사가 "이 난관을 헤쳐가기 위한 고민에 빠져 있는데,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라며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라고 이야기했던 말의 뜻을 새삼 깨닫게 해준 의미있는 특집이었다.
설민석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킨 이들은 이순신 장군과 민중이라고 알렸다. 임진왜란은 조정이 일본을 외면해 방만했기 때문에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무능력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왕이었던 선조는 수도와 백성을 버리고 홀로 의주로 도망가 버렸고, 일본은 조선 양반들이 백성들에게 횡포를 부렸던 만큼 백성들이 금세 자신들 편에 서고 손쉽게 조선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순신이라는 위대한 성웅이 있었고, 백성들의 애국심은 대단했다.
설민석은 "기득권에 탄압받던 조상들이 일본을 반겼어도 이상하지 않았다"며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의 주인이 돼서 나라를 지킨 것은 우리 조상"이라해 감동을 자아냈다.
일제강점기,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시인 윤동주, 백범 김구 등이 기록한 위대한 역사도 알려줬다. 유관순은 열여덟 살 나이에 일제에 의한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후 만세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일제 재판정까지 끌려가게 됐다.
감형 회유와 갖은 고문과 폭력에도 굴하지 않던 유관순은 "자유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며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외치며 옥 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이어갔다. 윤동주 시인은 창씨개명을 했던 현실에 부끄러워하며 '참회록'과 '쉽게 쓰여진 시'를 남겼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적힌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대안은 지금 상처 받은 이 시대에 힘이 돼줄 수 있는 구절이 됐다.
세종대왕이 펼친 애민정신 역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김영현 작가와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집필한 박상연 작가는 "지도자들 입장에선 백성이란 존재가 적당히 무식하고 정치에 무관심해야 통제하기가 쉽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어 백성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길 바랐다"며 "하루하루가 고단한 사람들을 위해 쉬운 글자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의 뜻에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가 담겼다.
박상연 작가는 "한자가 순서를 바꾸면 뜻이 바뀌는데 훈민정음은 한자 순서를 바꿔 보면 백성의 소리를 새겨들음이 마땅하다는 뜻이 나온다"며 "세종대왕은 백성들에겐 관대하고 한없이 인자했지만 관리들은 엄청 쪼았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설민석은 우리의 오늘은 과거 조상들이 이뤄낸 역사가 만들어낸 현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유재석은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지킨 건 백성"이라고 했고, 설민석은 "그 말이 이번 프로젝트의 중심 주제"라며 "우리 민족은 반만년 동안 수많은 외세의 참략을 받아왔다. 단결, 근성의 DNA가 있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잠재된 근성의 DNA를 통해 부활시키자는 것"이라 말해 멤버들과 래퍼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지사'라는 의미도 설명했다.
지사는 지금 살아 있으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로,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에게 교훈과 감동을 주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면 지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멤버들과 래퍼들은 조금씩 더욱 사명감을 갖고 프로젝트에 임하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의 '역사X힙합 프로젝트'는 현 시국에서 박탈감과 좌절감,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성실히 오늘을 살아오던 다수 시청자들에게 힘이 됐다.
역사를 만들고 기록하는 그 주인공은 곧 국민이고, 우리 국민은 기득권 층이 비웃는 개, 돼지가 아니라 단결과 근성으로 나라를 지켜낸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은 후손들이라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이번 특집은 멤버들과 뮤지션들은 물론, 시청자들의 머리 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방송 후 피드백은 더욱 뜨거웠다.
이들이 만들 역사X힙합 노래는 어떻게 완성될까. 6팀은 각각 세종대왕, 일제강점기, 이순신, 유관순, 윤동주 등을 주제로 삼아 전문가들로부터 깊은 조언을 얻었다. 보다 공감가고 비판적이며 속 시원한 랩 가사를 기대해도 좋을까. 벌써부터 노래가 기다려진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