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랙머니'는 '부러진 화살'(2011)과 '남영동 1985'(2012)의 정지영 감독이 7년만에 내놓는 극영화다. 이 영화는 '부러진 화살'이나 '남영동 1985'가 그랬듯 사회고발적인 성격을 띠는 동시에 한 공감 가능한 한 인물이 맞닥뜨린 사건을 따라가는 대중적인 범죄 영화다.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먼저 공개된 '블랙머니'의 주인공은 조진웅이 연기한 서울지검 막가파 검사 '막프로' 양민혁이다. 양민혁은 자신이 담당한 연쇄 뺑소니 사건의 피의자가 자살을 하고 난 후 '성희롱 검사'라는 누명을 쓰게 되고, 이를 벗이 위해 사건 조사에 나선다.
양민혁의 조사를 받은 직후 동생에게 문자 하나를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피의자는 대한은행의 직원 박수경으로, 은행검사국 최민규 차장과는 연인 관계였다. 최민규는 박수경보다 앞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상황. 얼마 안 되는 기간 두 사람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미심쩍게 여겼던 양민혁은 이들이 대한은행 매각과 관련해 서울지검 중수부의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들의 죽음이 대한은행 매각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던 중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인 CK로펌 김나리 변호사(이하늬 분)가 대한은행 단순매각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사 서권영(최덕문 분)을 찾아오고, 마침 서권영과 함께 있었던 양민혁은 김나리에게 접근해 도움을 받는다.
'블랙머니'는 미국계 사모펀드 회사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한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모피아'(MOFIA: 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만큼, 영화는 국내 은행의 헐값 매각 사건 배경에 모피아가 있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풀어간다.
정지영 감독은 어려운 경제학적 개념들을 영화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영화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경제학을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양민혁이 검사임에도 평범한 캐릭터로 그려지며 보는 이들의 공감과 몰입을 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미덕은 누구도 관심 갖지 않을 수 있는 '그들만의 세상' 속 이야기를 우리 삶의 이야기로 끌어와 현실감있게 재연했다는 데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가능할 법한 논의들이 상업적인 '극영화'를 통해 전달된다.
양민혁을 연기한 조진웅은 자신의 색깔과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난 듯 보인다. 뜨거운 피를 갖고 있는 '열혈' 검사는 대중이 좋아할만한 그의 모습이다. 차갑고 이지적이지만, 자신만의 대의를 갖고 있는 김나리를 연기한 이하늬의 캐릭터도 돋보인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는, 실리적이고 논리적인 이 인물이 맞닥뜨리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모피아'에 대한 단죄로 끝날 수 있는 영화를 개인적인 문제로 보게 하는 데 일조한다.
감독의 명성만큼 중량감을 키워주는 여러 굵직한 카메오들이 등장한다. 카메오들의 활약 역시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 요소다. 러닝 타임 113분. 11월13일 개봉.